새 학기가 시작된 지 벌써 세 달째다. 세월이 참 빠르다. 신입생들은 어색한 화장과 굽 높은 구두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하려니까 벌써 중간고사를 본단다. 고등학교까지 익숙했던 객관식 문제의 시험도 있긴 하지만 처음 접해 보는 ‘~에 대해 약술(略述)하라’는 주관식 문제 앞에서 어린 신입생들의 고민은 깊다. “재수를 해야 하나?”, “이게 내가 간절히 원했던 그 대학생활일까?” 학생들의 시험 답안지를 채점하려는 교수들도 고민이 많다. 답이 죄다 똑같으니 말이다. “아, 수업 시간에 내가 강조한 것만 외워 썼구나”, 완성도는 좀 떨어지더라도 뚜렷한 주관이 선 학생은 없는 걸까?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새내기들에게 너무 많은 걸 기대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반 뼘이나 되는 두께의 답안지는 글자체만 다를 뿐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그 원인을 찾아야만 했다. 학생들의 천편일률적인 답안의 근거로 군대를 떠올렸다. 오(伍)와 열(列)을 맞춰 행진하는 걸 배우는 군대에서 개성은 어쩌면 사치다. 가로, 세로, 그리고 대각선에서 벗어난(!) 병사는 용인될 수 없다. 아참, 이제 갓 대학생이 된 그들이 군대를 알 리가 없지…. 그렇다면 수학하면 《수학의 정*》을, 영어하면 《성*종합》 하는 식의, 예외 없는 주입식 수업의 결과일까? 까까머리 학창시절 겨드랑이에 끼고 다니던 그 참고서를 지금도 들고 다니는 걸 보면 놀랍다. 인간의 심리적 특성도 있겠다. 공과 대학에서 차량용 자전거 거치대에 대한 새로운 디자인을 과제물로 내주었다고 한다. 차량에 부착하기 쉽고 동시에 자전거를 단단히 고정시킬 거치대를 만들어 보라는 주문이다. 그러면서 샘플로 현재 시판되고 있는 차량용 거치대를 보여 줬다고 한다. 자동차 지붕 위에 자전거를 싣는 형태의 비효율적인 모델인데, 키 크고 힘 센 사람도 다루기 쉽지 않다. 불행히도 모든 과제물이 교수가 샘플로 보여준 그 결함 있는 디자인을 어떻게 변형할까 하는 아이디어로만 가득했다고 한다. 아무리 새로운 아이디어라도 그 샘플을 못 벗어나는 것들이었다.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라면 그런 과제물을 안 썼을 거다. 1975년 그는 백상아리가 나오는 영화 〈죠스:Jaws〉를 찍고 있었다. 그는 단번에 사람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충격적인 첫 장면을 원했다. ‘처음에는 튜브 사이로 삐져나온 손, 장난치듯 움직이는 발들의 평화로운 장면을 보여주는 거지. 그러다 검은 바다 속에서 알 수 없는 움직임을 슬쩍 끼워 넣을 거고…. 이걸 잘게 잘라 번갈아 가며 보여주다가 마치 화살을 쏜 듯 솟구치는 상어 몸통과 화면 전체를 삼키기라도 하듯 성난 아가리를 클로즈업 하는 거지….’ 머릿속으로 이런 오프닝부터 모든 계산이 끝난 감독은, 그러나 예상치 못한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기계 상어가 퍼졌어요!’ 당시의 기술로는 해결치 못 할 기계적 결함 때문에 스토리 수정이 불가피하겠다는 기술팀의 전화였다. ‘아, 어쩌지? 이 문제를 어떻게 푼다?’ 하지만 끝까지 집중력을 놓치지 않았던 스필버그 감독은 그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상어가 안 나오는 상어 영화’를 만든 거다. 영화가 반이 지났는데도 상어를 안 보여줬다. 꼭 등장을 해야 할 장면에서는 수면 위 지느러미만 슬쩍 보여주는 식이다. 그 사이를 존 윌리암스(John Williams)의 그 유명한 띠~디 띠~디 하는 죠스 주제곡으로 채웠다. 이 작전이 주효했다. 소리는 나는데 보이지 않으니 사람들은 더욱 공포를 느꼈다. 영화가 시작된 지 81분이 지나서야 상어, 그 완전한 모습이 드러났다. 그 사이에 기술적 문제도 해결되었다는 말이다. 스필버그 감독은 말했다. “눈에 보이는 게 적을수록 오히려 더 많은 걸 보게 됩니다. 영화에 관객의 집단적 상상력이 더해지는 거죠” 관객의 상상력 덕분에 영화는 공전의 히트를 쳤다. 기술적인 한계를 감독의 기발한 아이디어로 극복한 성공 사례다. 문제만 쳐다보지 않았기에 가능한 성공이었다고 해야 한다. TV에서 백상아리 한 마리가 거제에서 잡혔다는 뉴스가 흐른다. 시험지를 바라보던 눈은 어느새 스필버그 감독을 떠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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