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평왕의 무덤이 있는 보문동 남촌마을은 앞쪽으로 펼쳐진 넓은 논벌 너머로 서악이 바로 바라다 보이는데 특히 해질녘 풍경이 좋다. 일대는 전신주가 없어 밤에 별을 찍으러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머지않은 곳에는 원효의 아들이며 신라 유학의 아버지인 설총의 묘도 있다.
마을의 남쪽에 진평왕의 무덤이 있고 다시 그 남쪽은 낭산이고 낭산에는 선덕여왕의 무덤이 있다. 달이 밝으면 딸이 오든지 아버지가 가든지 마실 나서기에 좋은 거리다. 서로 비슷한 시간에 길을 나서면 한지 넓은 들 가운데서 만나지기가 쉬우리라. 달 밝은 밤에는 넘실거리는 황금들녘도 좋은 풍경이 될 것이다. 아버지가 먼저 길을 나섰다면 황복사 탑 아래서 다리를 쉬고 있으면 곧 딸이 올 것이다. 딸은 골짜기를 타고 산을 내려와야 하므로 아버지에 비해 길이 더딜 것이다. 탑의 기단에 앉아 나누는 이야기도 좋으리라. 두 부녀가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할까.-얘야, 여긴 의상이 출가한 절이 아니더냐?-맞아요, 아버지. 대사가 탑돌이를 할 때 허공을 밟고 돌았다잖아요.-그래, 그이의 법력이 그만큼 높았단 뜻이겠지.(벌레소리가 한 번 자지러지고 나서)-아버지, 절 낳으시고 사내애가 아니라 많이 서운하셨죠?-여자인 네게 위를 잇게 해야만 했던 게 고통이라면 고통이었다. 이 명활 자락에 앉아서도 널 지켜내지 못했으니 내가 죄인이지. 비담, 그놈이 내가 말끔히 손봐 놓은 명활성을 차고 들어와 널 반역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니? 진평왕의 성은 김씨, 이름은 백정, 24대 진흥왕의 장손이며 25대 진지왕에게는 장조카가 된다. 작은아버지인 진지왕을 폐하고 579년에 왕이 되어 632년에 승하할 때까지 54년 동안 왕으로 있었다. 장기집권이다.
진평왕은 태어날 때부터 얼굴 생김이 기이하고 체격이 장대하였다고 하는데 아마도 누대에 걸친 근친혼의 결과일 것이다. 진평왕의 아버지 동륜 태자는 자기의 고모와 결혼하여 진평왕 백정을 낳았다.
거슬러 올라가서 23대 법흥왕은 아들이 없고 딸만 두었는데 그 딸을 자신의 동생과 결혼시켰다. 삼촌과 조카딸의 혼인이다. 그 사이에서 태어난 삼맥종이 왕위에 오르니 바로 24대 진흥왕이다. 그러니 법흥왕은 진흥왕의 큰아버지이자 외할아버지이다. 다시 진흥왕은 여동생과 자신의 큰아들 동륜을 결혼시키니 이번에는 고모와 조카의 혼인이다. 그 사이에 태어난 백정이 바로 진평왕이다.
진평왕의 아버지 동륜은 태자로 봉해진 지 육 년 만에 죽고 왕위는 둘째 아들 사륜에게 넘어갔다. 그러나 사륜은 즉위한지 사 년 만에 폐위된다. 사륜을 폐위시키고 백정을 왕으로 세우고자 했을 때 신라의 조정이 들썩거렸다.
그래도 핏줄이라는 생각에 유궁에 가둔 것으로 끝났지만 내친 김에 사륜의 목을 베어버렸어야 했는데……장차 저들이 즉위식에서 무슨 일을 일으킬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백정의 어머니 만호부인은 입맛이 썼다. 무엇보다도 즉위식을 빼앗기지 않고 무사히 치르기를 고심하던 만호부인이 무릎을 쳤다. 바로 그것이다! 하늘로부터 신물을 받는 것! 만호부인은 왕의 즉위식에 온갖 화려와 위엄을 다하여 왕실과 국인의 불만을 주저앉히기로 한 것이다. 만호부인은 온갖 화려한 색들이 있었으나 다 물리치고 황제의 색이라는 누런 황옥으로 허리띠를 만들어 어린 왕의 허리에 둘러주었다.
마침내 즉위식 날, 어린 왕의 허리에는 누런 옥대가 채워져 있었다. 자황색 곤의 위에 누런 허리띠는 잘 어울렸다.“어젯밤 상제의 사자가 궁전의 뜰까지 오시어 직접 전해주시었소!” 어린 왕의 뒤에 후광처럼 서 있던 만호부인이 입을 열어 선언했다. 모두 놀라 왕을 바라보았다. 비록 어렸지만 하늘이 내리신 옥대를 차고 왕은 감히 범접 할 수 없는 위엄마저 엿보였다. “무릇 왕이란 하늘의 자손이라지만 이렇게 옥대까지 손수 내려주는 일은 일찍이 없던 일이 아닌가?” “바로 백정이 왕좌의 주인이라는 증표로 옥대를 내리신 모양이네.” 수군거림은 만호부인의 귀에도 들렸다. 특히 백정왕에게 옥황상제가 옥대를 내렸다는 소문은 나라 안에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왕이 천지신명께 받드는 제사, 교사를 위해 궐 밖을 나서면 옥대를 보겠다고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고는 했다.
왕은 자라면서 힘도 장사였다. 재위 18년의 어느 날 왕이 내재석궁의 돌계단을 밟았는데 세 개가 한꺼번에 부러지는 일이 일어났다. 왕의 힘이 저리 장사이시니 어떤 전쟁의 소용돌이에서도 나라를 구해낼 수 있으리라, 미더웠다. 사람들은 기쁘게 그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대왕폐하를 외쳤다. “이 돌을 치우지 말고 뒷사람에게 보이도록 하라.” 그리하여 그 돌은 다섯 가지 움직이지 않는 돌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때부터는 만호부인도 뒤로 물러나 앉았다. 이제는 감히 그 앞에서 눈을 치뜨는 신하도 없었고 그 위에 힘까지 장대한 삼십 초반의 장년이니 이제는 누구의 도움 없이도 저 자리를 지킬 수 있으리라.
정순채 경북문화관광해설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