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경주는 물론, 근대까지도 경주는 여전히 선망하는 여행지였다. 일제에 의해 경주 관광 붐이 일자 해방 전, 시인묵객들을 비롯해 조선인들도 경주를 더욱 자주 찾기 시작하고 지식인들은 글을 남기고 각 언론 매체에 글을 실었다. 이에 학생들이 경주에 수학여행을 오기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이 경주를 찾았고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옛 왕조의 자취에 주목했다. 신라의 문화유산을 보고 일부는 여행기를 남기고 정제된 언어인 시로 쓰거나 소설 등을 남겨 경주를 추억하고 문학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월성, 첨성대, 포석정, 불국사, 석굴암 등은 당시에도 많이 찾는 장소였다. 여행자들에게 자취만 남은 옛 왕조의 유산은 화려했던 과거를 연상케 하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주목한 조성환 편저자는 그들이 쏟아낸 무수한 담론들을 정리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가 ‘경주에 가거든 -한국 근대 지식인을 통해 본 경주(학고방, 2010)’을 펴낸 연유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에서 해방 공간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대 지식인의 경주 체험을 모은 것으로 일종의 경주에 대한 자료집인 셈이다. 그는 “아마도 근대 경주 관련 담론이나 글은 금강산 빼고는 가장 많을 것”이라며 그렇지만 수록한 글은 그중 일부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경주에 대한 문인, 학자, 선조들은 물론, 감수성 예민한 여고생들이 경주를 보고 느낀 기행문, 유기, 순례기나 감상문, 회고성의 글, 전설, 소설, 시, 시조 등을 엮어 다양한 장르로 구성했다. 이번호에서는 먼저, 조성환 편저자가 두 번째 장으로 구성한 ‘문학의 장, 경주의 빛과 그림자’에서 보이는 문학 작품으로 표현된 경주를 개략적으로 소개한다. 이육사, 박목월, 김동리, 서정주, 모윤숙, 조지훈, 김동환 등 근대의 문화사에 족적을 남긴 걸출한 문인이 쓴 글들은 지금과는 달리 또 다른 눈으로 경주를 읽어내고 재발견 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고 있다. 다음호에서는 고유섭, 현진건, 황수영, 이병기, 이광수 등 근대 지식인들과 문인들이 경주를 다녀가면서 남긴 여행기와 자료 등을 역시 간략하게나마 소개할 예정이다. -기라성 같은 문인들이 경주를 노래함 두 번째 장에 나오는 경주 관련 시와 소설 등은 다음과 같다. ‘경주의 달밤(이병기)’ ‘여명(이태준)’ ‘불국사 돌층계(이태준)’ ‘안압지의 모색(이원조)’ ‘옥룡암에서(이육사)’ ‘초하의 반월성(김동환)’ ‘추억의 불국사(성갈맥)’ ‘무녀도(김동리)’ ‘가실(춘원 이광수)’ ‘석굴암(월탄 박종화)’ ‘불국사(박목월)’ ‘계림애창(조지훈)’ ‘이 동굴 안을 거니는 자여 경주 석굴암(조영출)’ ‘경주시(서정주)’ ‘석굴암(임학수)’ ‘석굴암 관음상의 노래(임학수)’ ‘경주 길(모윤숙)’ ‘경주를 보고(이병기)’ ‘석굴암(이병기)’ ‘다보탑(김상옥)’ ‘신라문학 논의(문일평, 모윤숙 양씨 일문일답기)’ 등 기라성 같은 문인들이 경주를 노래했다. 조성환 편저자의 작품의 이해를 돕는 해제도 곁들였다. 당시 경주의 위상 및 표상을 비교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가람 이병기(1922~1942) ‘경주의 달밤’...경주 유적 소개보다는 당시 경주의 생활상 소개 이병기가 휘문고보 교원을 역임할 당시, 경주의 유적을 따라 소개하는 내용을 지양하고 당시 경주의 생활상을 소개하고 있어 특히 흥미롭다. ‘침침한 좁은 골목을 나서 제법 전등 깨나 켜 있는 큰 길로 걸어갔다. 좌우에 있는 상점, 포목점, 잡화점, 사기점, 철물점 따위가 일인이 아니면 지나인(支那人, 중국인)의 것이고 물러터진 감, 능금, 배나 그 옆에 몇 개 놓고 파는 것만은 그들이 아니다. 하나 어느 것이든지 거기에는 먼지 하나 움직이지 않고 전등은 가물가물하고 이따금 어디서 쿨룩쿨룩 기침 소리만 날 뿐이다’ ‘씨름꾼은 대개 상투쟁이가 아니면 머리 땋은 총각들이다. 구경하러 온 이도 또한 그런 이들이고 간혹 기생을 데리고 온 양복쟁이 몇 사람이 있을 뿐이다. 순 경주 사투리를 써 가지고 함부로 덤부로 떠드는 소리는 귀에 설기는 하지만 토속 연구의 재료로는 이 밖에 다시 없을 것 같다’ 장고 소리와 최신 유행가가 울려 퍼지는 새로 생긴 요릿집, 각종 상점들, 북천 냇가에서 벌어지는 씨름판 등 당시의 경주 시가의 전경이 눈앞에 들어오는 듯하다. 이 글은 이병기가 1930년 생도들, 인솔교사들과 동행한 경주 수학여행의 체험담이다. -이육사(1904~1944)의 ‘옥룡암에서’...1942년 7월부터 경주 옥룡암에서 요양하며 창작구상 ‘초략// ‘석초형! 나는 지금 이 너르다는 천지에 진실로 나 하나만이 남아있는 외로운 넋인듯하다는 것도 형은 짐작하리라. 석초형, 내가 지금 있는 곳은 경주읍에서 불국사로 가는 도중의 십리 許에 있는 옛날 신라가 번성할 때 神印寺의 古趾에 있는 조그마한 암자이다. 마침 접동새가 울고가면 내 생활도 한층 화려해질 수도 있다. 중략// 석초형, 혹 여름에 피서라도 가서 服藥이라도 하려면 이곳을 오려무나. 생활비가 저렴하고 사람들이 순박한 것이 천년 전이나 같은 듯하다. 중략// 아무튼 경주 구경을 한 번 더하여 보려무나. 몇 번이나 시를 써 보려고 애를 썼으나 아직 머리 정리되지 않아 못하였다. -7월 10일’ 독립투사요, 민족적 저항시인이었던 육사는 1942년 성모병원에서 퇴원한 후 7월부터 경주 신인사 옥룡암에서 요양했다. 이 글은 요양할 때 신석초 시인을 경주로 불러들이려는 편지글이다. 이육사는 이곳에서 3개월 예정으로 요양하는 동안 창작을 구상하면서 자신의 미래를 설계한 듯하다.-김동환(1901~?)의 ‘초하의 반월성’...경주의 유적과 자연에 대한 찬탄과 감탄 ‘아아 그리운 신라 장안이여. 천하의 길이 여기 한 번 모였다가 다시 만방으로 퍼지지 않던가. 또 국내로부터 한다하는 재자(才子)와 무사와 화랑들이 세상에 큰 이름 한번 띄워 보겠다고 서울로 서울로 하여 경주로 찾아들고 있지 않던가. 이리하여 신라에서 얻은 이름은 곧 만국에서 얻은 이름이 되고 경주에서 얻은 명성은 그가 곧 신라 팔도에서 얻는 명성이 되지 않던가’ 김동환의 경주 기행문은 모두 5부로 구성돼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신라의 천년 수도 경주의 유적과 자연에 대한 찬탄과 감탄으로 일관돼있다. 김동환의 기행문은 시인의 상상적 세계에서 나온 것이다. 시인의 상상력과 황량한 역사적 고도에 즐비한 유적유물과의 만남이 찬탄과 감동으로 이어지는 서술을 이 글에서 발견할 수 있다. -김동리(1913~1995)의 소설 ‘무녀도’, 춘원 이광수(1892~1950)의 소설 ‘가실’ 김동리는 성건동에서 태어났다. 대표작 무녀도와 을화에서 성건동의 무당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다. 자전적 소설 만자동경, 우물 속의 풍경 등도 유년기 고향 체험을 형상화 한 자전적 소설이다. 춘원 이광수(1892~1950) 소설 ‘가실’은 이광수가 중국에서 귀국한 후 발표한 첫 소설로 동아일보에 1923년 12회로 연재한 신라 말기를 배경으로 한 단편 소설이다.-박목월(1916~1978)의 시 ‘불국사’, ‘선도산하’, ‘사향가’, ‘춘일’, ‘청운교’ 시 ‘불국사’는 달빛을 받고 있는 불국사 자하문, 어둠 속에 아련히 보이는 대웅전 본존불, 범영루의 그림자 등의 이미지를 청각 이미지와 결합해 화자의 내적 외로움을 표현하고 있다. 이 밖에도 목월의 향토색 진한 경주 관련 시들로는 ‘선도산하’, ‘사향가’, ‘춘일’, ‘청운교’, ‘토함산’, ‘왕릉’, ‘보랑’, ‘무제’ 등이 있다. ‘선도산/ 수정 그늘/ 어려 보랏빛// 청주 냄새/ 바람을/ 우는 여울울// 주막집/ 뒤뜰에/ 산그늘이 앉는다.// -선도산하(仙桃山下) 전문.-조지훈(1920~1968)의 ‘계림애창’, 서정주(1915~2000)의 ‘경주시(慶州詩)’ 시인 조지훈은 그의 생애와 시 세계관의 변모 과정 중 제4기(경주 순례, 방랑시기)에 경주 관련 시를 지었다. 1942년에 쓴 ‘계림애창’도 그럴 것이다. ‘임오년 이른 봄/ 내 불현듯 서라벌이 그리워/ 표연히 경주에 오니/ 복사꽃 대숲에 철 아닌 봄눈이 뿌리는 4월일레라./ 보름 동안을 옛터에 두루 놀 제/ 계림에서 이 한 수를 얻으니//..., -‘계림애창’ 중에서- 이 외에도 조지훈의 ‘고사(古寺) 1,2’가 있다. 서정주의 ‘경주시(慶州詩)’에는 ‘안압지’, ‘시림’, ‘석빙고’, ‘첨성대 1,2’가 있다. 그리고 해방후 ‘석굴암 관세음의 노래’를 썼다. ‘적삼 벗어놓고 앞발로 기어 올라간/ 첨성대 다락 위에 경주는 로맨티스트/ 오, 하늘보담 아름다운 낭만의 왕국이여!/ 경주 사람은 로맨티스트라야 하오/ 천년 별하늘에 센 머리 흩날리는/ 늙은 점성사의 아들/ 경주 사람은 로맨티스트라야 하오.//’ -서정주, ‘첨성대2’ 전문. 모윤숙(1910~1990)은 한국 전쟁 기간에 대한여자청년단장을 맡았을 때 부산 내려가는 길에 경주를 둘러보고 쓴 시 ‘경주 길’이 있다. 또 모윤숙은 ‘문일평, 모윤숙 양씨 일문일답기’에서 ‘신라 문학 논의’를 했다. 당시 삼천리사 기자였던 모윤숙이 원로 문일평과 인터뷰하면서 신라 문학 전반에 관한 이야기를 기록한 글이 전한다. 이병기가 경주를 보고 읊은 시들은 ‘월성 1,2’, ‘봉황대’, ‘안압지’, ‘문천’, ‘불국사’, ‘석굴암1,2,3,4’ ‘토함산1,2’, ‘태종무열왕릉1,2,3’ 등이 있다. 수많은 시인이 불국사와 석굴암을 제재로 삼아 작품을 발표했는데 이병기도 경주에 관한 다수의 현대 시조를 남긴 바 있다. 김상옥(1920~2004)의 경주 유물 관련 시들로는 ‘옥적’, ‘십일면관음’, ‘대불’, ‘무열왕릉’, ‘포석정’, ‘재매정’, ‘돌탑’, ‘박물관’, ‘석굴암에서’, ‘아사녀의 노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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