放心
-손택수
한낮 대청마루에 누워 앞뒤 문을 열어놓고 있다가, 앞뒤 문으로 나락드락 불어오는 바람에 겨드랑 땀을 식히고 있다가,스윽, 제비 한마리가,집을 관통했다그 하얀 아랫배,내 낯바닥에닿을 듯 말 듯,한순간에,스쳐지나가버렸다집이 잠시 어안이 벙벙그야말로 무방비로앞뒤로 뻥뚫려버린 순간,제비 아랫배처럼 하얗고 서늘한 바람이 사립문을 빠져 나가는 게 보였다 내 몸의 숨구멍이란 숨구멍을 모두 확 열어젖히고
-가끔은 ‘放心하라’는 다정한 권유 ‘放心’의 사전적 의미는 ‘마음을 풀어놓아버림’이다. 방심하다가 코 베이는 세상이다보니 “방심하지 마라.”라는 말은 우리의 아침 저녁 다짐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이 시는 그와는 반대지점에서 출발한다. 시인은 앞뒷문을 열어놓고 겨드랑 땀이나 식히려 누웠다가 그 문을 통해 “제비 한 마리가 집을 관통”하는, “무방비로 뻥 뚫려버”리는 체험을 한다. 그것도 제비의 “하얀 아랫배,/내 낯바닥에/닿을 듯 말 듯”한 아슬함으로. 시인이나 집이나 방심하다 제비한테 당했다. 시인보다 더 놀란 것은 방심하다 제비한테 당한 “어안이 벙벙한” 집이다.
그러나 얼마나 통쾌하고 시원한 일인가. 타자가 내 몸과 마음을 관통하고 들어왔다는 것은! 형식상 이 시는 두 개의 관통 체험을 담고 있다. 아니 하나의 관통체험을 통한 세상에 대한 열림이라는 말이 더 맞다. 하나는 집의 중심을 뚫고 들어온 “아랫배 하얀 제비”이고, 다른 하나는 “내 몸의 숨구멍을 모두 확 열어젖히고” 가는 “제비 아랫배처럼 하얗고 서늘한 바람”이다.
시인은 사소한 체험을 통해 인식의 역전을 경험한다. 이 인식은 모든 이에게 스며야 한다. 시인은 사람과 자연, 사람과 세상, 무엇보다 나와 너의 열림의 바람을 시의 밑바닥에 깔아놓지 않았을까? 마음과 몸을 풀어놓아 다른 이들이 뚫고 들어오기를, 그리하여 많은 이들이 바람처럼 가볍게 소통하기를. 새삼 가족관계를 돌아보아도 좋을 일이다. 지금도 어느 처마 밑에 집을 짓고 있을 제비,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스쳐가는 바람이 고마운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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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은 시인 약력경북 안강 출생. 1987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95 매일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시집 『두 힘이 숲을 설레게 한다』, 『눈먼 새를 다른 세상으로 풀어놓다』, 『고요 이야기』, 저서 『서정주 시의 시간과 미학』외 7권, 1996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경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