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대종 단청 작업을 앞두고 기획된 이번 취재는 백제문화권 부여 답사 결과를 전하며 마무리 지으려한다. 부여의 백제문화단지내 재현된 왕궁과 부여군청내 위치한 백제대종, 국립부여박물관 등을 답사하면서 주로 백제식 단청의 선례 작업에 주안점을 두고 유심히 살펴보았다. 백제문화단지와 백제대종의 단청들은 지금껏 보아오던 단청과는 확연하게 다른 느낌을 주고 있었다. 문양도 그러했지만 색채도 온화하고 부드러웠다. 부여군청내에 있는 백제대종도 기둥이나 종각의 문양이 문화단지와 거의 흡사했다. 백제식 단청의 재현을 보면서 앞으로 경주에서 이뤄질 신라적 단청이 나아가야 할 길도 자연스레 모색되었다.
답사를 떠났던 지난 3일은 송화가루가 화염처럼 휘몰아치던 진풍경을 연출한 날씨였다. 바람까지 거세게 불어 재현한 왕궁 처마끝 풍경소리들이 제법 요란스럽기까지 했다. 심상치 않았던 날씨였음에도 자문을 위해 애써주신 윤재환 선생의 정성과 노고에 감사드린다. 그는 부여 출생으로 (재)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이사장 이어령) 사무국장, ‘백제의 꿈, 부여의 향기’ 미술전시 등을 기획한 문화기획자다. ‘윤재환의 신 부여팔경’을 출간한 바 있다. 그리고 백제문화단지 단청의 이모조모를 설명해 준 백제문화단지 관리사업소 이강복 학예연구사에게도 감사드린다.
-능산리와 송산리 고분 벽화의 문양 흔적과 백제의 여덟무늬전돌, 백제금동향로 등에서 단청 문양 도출해 1400년 전 백제의 숨결을 느낄수 있었던 ‘부여 백제문화단지’는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에 위치했다. 사비성, 백제역사문화관, 한국전통문화학교, 테마파크 등으로 구성된 이곳은 국내 최초로 삼국시대 백제왕궁을 재현하고 있다. 특히 고졸하고 은은해보이는 단청은 백제시대의 대표적인 건축양식으로 사비성의 모든 건물마다 백제시대 유적과 유물에 근거한 사실적 재현을 구체화 시켜주고 있었다. 지난 1994년부터 20여 년에 걸쳐 조성된 이곳은 체계적인 연구와 고증을 통해 조성됐다고 한다.
윤광주 선생은 “백제권인 부여에 지어진 백제문화단지 등의 건축물 단청에는 능산리와 송산리 고분 벽화의 문양 흔적에서 연화문, 봉래산 등을, 금동향로의 용형 등에서 백제의 성격을 잘살려 초를 잡는데 재현하고 있습니다. 고구려의 고분 벽화의 고구려 건축 양식 도형에는 당초 무늬, 창방 주두의 도깨비 무늬, 사신도(청룡, 백호, 현무, 주작) 및 그 당시 풍속 기록화가 그려져 있는데 이들도 반영하고 있습니다”라고 한 바 있다.
윤재환 선생<인물사진>은 사비성으로 재현된 왕궁의 단청을 가리키며 “바닥 전돌과 천정 등에 반용문, 봉황문양 등이 그려져 있는데 이들은 백제의 여덟무늬전돌에서 보이는 문양들로, 거기에서 도출한 것으로 보입니다. 보물343호로 지정된 백제의 여덟무늬전돌은 산경치, 용, 봉황, 연꽃, 구름, 괴수, 도깨비 등 여덟가지 무늬로 구성된 전돌이며 이 벽돌에 새겨진 무늬는 백제금동향로의 문양과 비슷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부여군 능산리고분의 벽화 비운연화도에 대해서는 “부여읍 능산리고분 벽화는 판석으로 이루어진 벽면에 회를 칠하지 않고 벽화를 그려 넣었습니다. 벽면에는 네 방위신을 상징하는 사신(四神)을, 천정에는 비운(飛雲)과 연화문(蓮花文)을 그려넣었죠. 송산리 6호분과 함께 능산리고분 벽화는 그 제작기법 및 사신도의 존재에서 고구려 후기 고분 벽화의 영향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능산리고분의 현실천정(玄室天井)에 그려진 벽화의 모사도(模寫圖)로 동세가 있는 구름의 움직임이나 도안화 된 듯한 연화문에서 백제 특유의 온화하고 부드러운 표현이 보이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전시중인 백제금동향로의 문양들에 대해선, 용을 등장시키고 그 위 몸체에는 연꽃과 수중의 생물이거나 또는 물가와 관련된 동물, 뚜껑인 지상계에는 산악과 짐승 및 신선을, 천상계인 정상에는 봉황과 원앙을 배치했는데 봉황은 양을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동물이라고 했다. 백제식 단청재현시 이들 여러 유물의 문양을 적극 반영, 활용하고 있다고 했다.
-“백제시대 출토됐던 여러 유물의 문양들을 추출하는 작업부터 했습니다”, “기존 단청보다는 명도와 채도를 많이 낮추었습니다” 백제문화단지 내 단청 작업에 대해 백제문화단지 관리사업소 이강복 학예연구사는 일반적으로 봐왔던 기존의 단청 작업과는 달라 보일 것 이라는 말로 첫 운을 뗐다.
“백제시대 출토됐던 여러 유물의 문양들을 추출하는 작업부터 했습니다. 예컨대 무령왕릉 출토 금제 관식, 부여 능산리 고분 내 벽화, 백제시기 여러 불상 등에서 추출된 문양들을 도면화해서 도출한 것이지요. 경주도 천마총 금제관식 관모 등 신라의 문양을 이런식으로 추출할 수 있겠지요”라고 했다.
“조선시대 단청 문양과 차이가 있다면, 그런 백제문양에서 오는 차이겠습니다. 또 백제문화단지 내 왕궁 단청 역시 신라와 마찬가지로 불교 문화권이었으므로 사찰의 단청도 재현했습니다”며 시대적 분류인 금단청, 금모로단청, 모로단청을 명확하게 분류하는 것에는 신중을 기했다고 전했다. 여러 문헌 등을 참조해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고 초라하지도 않게 표현하려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기존 시행해왔던 일반적인 단청보다는 명도와 채도를 많이 낮추었습니다. 그것은 백제시대 고분 벽화등에서 보여지는 색채가 사간이 지나서 퇴색되었다기보다는 당시는 색채를 얻어내는 기본적인 재료들이 광물에서 얻어지는 것에서 연유한다고 추정했습니다. 즉, 현무암에서 검정색을 얻어내는 식이었죠. 천연재료를 통해 얻은 재료에서 색을 쓰니까 오늘날처럼 색을 도출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명도나 채도를 당시의 색과 어울리게 오늘에 재현한 것”이라고 했다.
한편 문화재위원 등으로 구성된 자문위원들에게는 고건축 및 단청에 걸쳐 총 490회 정도 자문을 구했다고 한다. 단청 부분만해도 4~50회 정도였다고. 첫 작업은 중요문화재 단청장(제48호) 만봉스님이 도안했으나 작업중 타계해 그의 제자가 참여해 마무리지었다고 했다.-나무의 건조 상태도 매우 중요, “5~6년간 나무를 건조시켜 물리적인 시간과 공 들였습니다” 2013년 복원을 마친 숭례문 단청 박락은 복구공사가 종료된 직후부터 일어났다. 공기(工期)를 맞추기 위해 검증되지 않은 시공법을 적용하고 화학접착제를 천연접착제인 아교에 섞어 쓴 것이 원인으로 조사된 바 있다.
이강복 학예연구사는 백제문화단지내 단청은 천연 광물 등에서의 안료 채취가 법적으로 금지돼 있어 안료나 정착제인 아교는 문화재청이 고시해 지정한 재료를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또 나무의 건조 상태도 매우 중요하다면서 “5~6년간 나무를 건조시켰을 정도로 물리적인 시간과 공을 들였습니다. 현재 단청작업을 한 지 8년여가 지났는데 보수없이 잘 유지되고 있습니다”라면서 숱한 자문과 고증에 의해 사실적으로 작업했음을 강조했다.
-신라대종, 모로단청과 금단청 혼합하는 ‘금모로 단청’으로 의견 수렴돼 한편 이번 작업을 담당하고 있는 경주시 관광컨벤션과 관광개발팀은 지난 11일 가진 1차 자문회의에서 단청의 종류, 색채, 문양의 유무 등에 개략적인 합의를 도출했다고 설명했다. 현재는 천연안료를 구할수도, 시공하기도 어렵다면서 합성 안료를 쓸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정착제로는 아교를 사용할 예정이라고 한다.
관계자는 “세부적인 부재 문양의 유무에 대해서는 모로단청과 금단청을 혼합하는 식의 금모로 단청으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이후 입찰을 통해 단청전문자격을 가진 이를 선정해 세부적인 문양을 제시해오면 다시 현장 자문을 가질 예정입니다. 공사를 시작하면서는 기본적인 문양과 종 문양 등과의 조화를 고려한 문양초를 현장에서 시범적으로 적용할 예정이기도 합니다”라고 했다. 한편 단청이 지나치게 화려할 경우 대종이 상대적으로 위축될 우려가 있어 은은하면서도 품위있는 단청으로 칠해 종을 부각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었다고 귀띔했다. 이번 신라대종 단청작업의 총예산은 2억5000만원이다.
“많은 시민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어 시에서도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작업에 임하려고 합니다” 끝으로 윤광주 선생은 “신라대종은 도심에는 하나밖에 없는 신라적인 건축물입니다. 따라서 대표적인 신라식 문양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먼저 신라 문양초를 만드는 용역을 결정해 하나둘씩 경주의 문양을 모아 두어야 합니다. 이런 자료들이 취합되면 앞으로의 왕경복원에 용이하게 신라의 문양으로 표현할 수 있겠지요”라며 신라문양 취합 작업을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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