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안착한 신라대종의 종각은 현재까지 단청이 칠해지지 않은 상태로다. 경주시는 이에 오는 9월부터 종각의 단청 작업을 시작해 연말내 완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현존하는 전국 목재건축물이 시대 구분 없이 조선 단청을 기본으로 하며 재현, 혹은 복원되고 있다. 이번호에서는 신라대종 종각이 신라적 단청으로 구현돼야 하는 당위성과 근거 등에 대해 알아보고 신라적인 단청의 구체적인 예를 제시해보았다.
신라대종 조각의 방향과 디자인 문양 부분(단청 부분 포함)에 자문위원을 맡고있는 윤광주 선생이 간곡한 자문과 함께 신라적 단청의 해법을 제시했다.
선생은 신라적인 단청 연구가 선제돼야하고 모범적인 디자인이 설정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최근 건강악화로 자문과 설명이 결코 쉽지 않았음에도, 경주에 대한 무한한 열정과 사명감으로 임해주신 선생께 필설로는 형언할 수 없는 깊은 사의(謝意)를 표한다.
다음호에서는 지난 1994년부터 20여 년에 걸쳐 조성된 부여의 백제문화단지와 백제대종 등을 답사했던 취재 일기와 백제식 단청에 주안점을 두고 복원된 선례를 구체적으로 소개하기로 한다.
-단청(丹靑)...건축 의장을 장식하는 색채의 그림으로 각 단청마다 특수성과 위계성 강조 단청은 고구려부터 시작해 삼국시대, 통일신라, 고려, 조선으로 건축 의장을 장식화하는 색채의 그림으로 장식되는 것을 말한다. 청색, 적색, 황색, 백색, 흑색 등 다섯가지 색을 기본으로 사용해 불전 및 궁궐을 장엄하고 신성하게 하는 기와 문양이나 치미 등의 조형미에서 그 화려한 모습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단청을 단확, 단벽, 단록, 진채, 당채, 오채, 화채 라고도 하는데 각 단청마다 특수성과 위계성을 강조하고 통일성과 다양성을 준다. 주로 목조 건물에 사용해 아름다움을 부여하고 균이나 해충 등을 예방을 해주는 역할도 한다.
단청하기 위해서는 먼저 종이에 문양의 초를 내는데 이를 출초한다고 한다. 단청은 무늬의 체계가 건물의 부위와 장식 구조에 따라 머리초(문양 작도, 모로단청과 금단청에서 부재 양쪽 끝에 들어가는 꽃문양과 앞뒤 장식부분을 지칭한다.
긴 부재의 양단에 장식되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으로 우리나라 단청문양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소)와 별지화(단청에서 화조, 산수, 인물, 동물 등을 회화적 수법으로 그린 단독 문양)로 나눌 수 있고 종류로는 보와 서까래 창방, 평방, 부재 끝에 머리초만 그리고 중간에는 긋기만 하여 가칠한 상태로 두는 ‘모로단청’과 창방, 평방, 도리, 대들보에 모루초를 그려넣고 화조, 산수, 신선, 서수(상서로운 짐승) 장식그림을 그려 넣는 ‘금단청’이 등이 있다. 즉, 부재 가운데 주로 기하학적문양으로 꽉 채워 장식한 단청으로, ‘八’자형 솟을대공 기둥장식, 주두, 공포, 서까래 등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도색 재료로는 석채를 써 왔으나 근세에 와서는 가공 산화물 안료를 사용하고 있다. 단청 종류로는 색 계열(색띠) 사이에는 호분(조개껍질 가루)을 칠하고 장단, 다자, 주홍, 삼청, 먹, 황, 장단, 주홍, 양록, 하엽, 양청, 석간주 등을 쓴다. 색 계열은 단청초에 의한 일정한 규칙에 따라 칠했다. 따라서 단청의 색 조화는 주로 이색(異色)과 보색(補色)을 위주로 했다.
-경주시가 신라대종 종각에 월정교 단청 등을 모델로 한다면 다시 한 번 고증, 재고해야 할 시점 경주시는 신라대종 종각 단청 작업을 위한 자문회의를 11일 가진다. 관광컨벤션과 담당자는 단청 작업은 설계용역이 8월까지 진행되고 이후, 9월 정도에 작업의 설계가 나온다며 시공업체 공개 입찰 후 9월부터 작업을 시작해 연말내 완공할 예정이라고 했다. 실제적 전문 공사업체가 정해지면 다시 실질적인 자문이 이뤄질 예정이고 이후 신라대종 종각 단청 작업이 속도를 낼 것이라는 것.
“신라대종의 전국적 위상과 함께 단청 또한 최고의 수준을 지향하고 있다”는 경주시는 월정교, 동궁과 월지, 금장대 단청이 검증이 된 상태여서 이들을 바탕으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미 복원한 월정교 단청은 조선시대식 단청이라는 의견이 많다. 현재 가로 부재를 장식하고 있는 모로단청에 대한 지적이 있어 왔는데, 월정교 모로단청 문양이 신라적 단청 문양에 적합했는지 살펴보았다. ‘모로단청’이란 앞서 설명한 것처럼 부재 끝 부분에 머리초 장식을 넣고 부재 가운데는 긋기로 마무리한 단청을 말한다. 경복궁이나 창덕궁에서 보이는 흔한 단청문양이다. 이 머리초 단청의 등장은 11~12세기경이며, 이 당시조차도 모로단청보다는 넝쿨무늬 등으로 채우는 ‘금단청’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8세기경 조성된 월정교 단청에 고려말~조선초 등장했을 모로단청의 등장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따라서 당시의 월정교는 넝쿨무늬로 가로 부재를 장식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백제문화단지 건축물에서 고구려 벽화 등에서 도입한 넝쿨무늬 문양이나 기하학적 문양에 대한 고증을 보인 것은 고무적이라는 견해가 많았다. 경주시가 신라대종 종각에 월정교 단청 등을 모델로 한다면 다시 한 번 고증해 보아야 할 사항이며 재고의 시점이 돼야 한다.
-고구려 벽화에서 경주 이견대, 석굴암 등의 단청에 가장 먼저 적용 1960년대 석굴암 보수 작업을 할 당시, 전실 목조 건축물을 지을 때 황수영 박사, 진홍섭 교수, 최순우 선생, 박물관 학예실을 담당했던 임천 선생, 임천 선생 제자인 김동현 박사, 신영훈 등 당대의 거장들이 배우며 보조해 짓고 도편수 이광규가 한 팀이 되었었다고 한다. 또 분황사 법당, 불국사 극락전, 청운교, 백운교, 월지, 이견대 등 경주 사적지 복원 사업을 할 때도 새롭게 고대 국가의 건축 양식을 찾으려고 노력하면서 창방에 도리를 받치는 ‘八’자형 솟을 대공 고색 단청을 하려고 여러 시도를 했었다고 전했다.
특히 고구려 벽화에서 인용한 것으로는 이견대, 석굴암 등 경주에서 가장 먼저 단청에 적용했다고 한다. 신라 문양을 이용한 독특한 단청, 단청초가 잘 나와야 시공도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므로 건물 전체적인 구성과 조화롭게 하는 작업은 무척 어렵고 중요했다고 한다.
윤광주 선생은 “신라의 문양을 이용한 독특한 당시 단청 문양이 그 뒤 몇 번인가 재도색을 하면서는 조선시대 단청초로 바뀌어 버렸죠. 그리고 경주 신라적 단청 재현은 거의 중지되었고 지금에 이르렀습니다”며 안타까워했다.
-신라의 금입택 장식, 월지, 황룡사, 분황사 등지에서 출토된 와당, 막새기와 문양, 전돌, 천마도 및 칠기 입사 문양 등 발굴해 가장 신라다운 단청 그려져야 선생은 “우리나라 단청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삼국시대 고구려 벽화에서 나타나며 그 당시 고구려의 고분벽화에 그려진 목조건물 구조에 대한 그림과 문양이 남아있어 당시 단청의 양상을 추이해 볼 수 있습니다. 목조 건축 그림의 창방이나 도리의 인동이나 주두(柱頭, 여러 형태의 기둥들의 맨 윗부분에 얹는 부재)에 도깨비 문양이 그려져 있습니다”라고 했다.
한편 고구려 단청 문양을 도입하는 것에 대해서는 “신라의 건축물은 모두 소실되고 없지만 문양은 살아있으므로 그 문양에서 초를 잡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구려 벽화 등에서도 참고하자는 것입니다. 백제권 부여에서도 백제 문양과 함께 고구려 벽화도 참고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삼국시대는 동시대로 삼국의 건축물은 거의 유사했을 것이고 현대에 와서 경주에서 가장 먼저 도입했던 경험도 있지 않습니까”라며 고구려 문양도 참고 해야한다고 주문했다.
삼국사기 기록에는 신라는 성골 이상만 오채의 사용이 허용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의 목조 건물은 모두 소실되고 현재는 단청의 형태나 색채가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신라에 이은 고려시대는 신라의 문화적 소재를 고스란히 계승했고 현재의 건축물로서 부석사 조사당, 안동 봉정사 극락전, 예산 수덕사 등에서 고려 건축 부위와 장식 규모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현재는 어느 지방에 가도 조선조 단청이 그려져 있어 그 지방의 역사적인 특성이 없지요. 전국 어디를 가도 조선시대 초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위대한 왕조입니다. 신라의 성골에 채색된 금입택 장식, 월지, 황룡사, 분황사 등지에서 출토된 와당, 기와 막새기와의 아름다운 문양, 전돌, 천마도 및 칠기 입사 문양 등을 발굴해 신라다운 단청초가 그려져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경주 신라권은 경주다운, 부여 백제권은 백제다운, 고구려는 고구려다운 고대 왕조의 단청초를 잡아야하는 것이지요”라면서 특히 복원을 앞둔 경주 왕경에는 신라다운 단청의장이 준비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신라대종 단청 작업이 그 작업의 단초가 돼야 할 것이라면서.
>>다음호 신라대종 단청(丹靑), 가장 신라적 단청으로의 해법은?(下)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