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탈이 났다. 과자와 사탕, 그리고 초콜릿을 입에 달고 살던 아들 녀석이 이가 아프다고 조퇴를 하고 왔다. 녀석이 치과에 다녀온 후로 화장실에는 전에 못 보던 전동 칫솔 하나가 놓여 있다. 녀석은 이제부터 군것질은 안 할 거며 이빨도 잘 닦을 거란다. 왠지 의사선생님이 권한 것 같지도 않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전동 칫솔이 꼭 있어야 한다는 거다. 애 엄마한테 전해들은 바로는, 녀석이 며칠 전 다녀온 캠프에서 누군가 전동칫솔로 양치를 하는 걸 본 모양이다. 그게 멋져보였는지 캠프를 다녀온 후 자기만 전동 칫솔이 없다고 생떼를 쓰더란다. 녀석이 잘 쓰는 전형적인 방법인데 ‘자기만 무조건 없다’고 ‘왜 나만 없냐’고 울어대는 신세한탄(?)형 졸라대기다. 이렇게 해서 녀석 손에 들어간 새 칫솔은 기분 좋은 빨간 색이다. 혹여나 아빠가 까먹을까 봐 두 번이나 전화를 해 구한 건전지를 들고 녀석은 화장실로 번개처럼 달려간다. 욕실 거울에 비친 아들 모습은 자못 비장했다. 떨리는 손으로 먼저 칫솔 안에다 새 건전지를 집어넣는다. 음극, 양극을 잘 살펴보고는 한 번 만에 성공한다. 고도로 집중하는 모습을 보니 평소 내가 아는 녀석이 아니다. 그 기세로 치약을 꾸~욱 짜더니만 거울 너머로 엄마 아빠를 흘낏 쳐다본다. 아, 이게 뭐라고 나까지 긴장된다. 녀석은 깊은 숨을 한번 쉬고는, 고개를 사정없이 흔들며 양치를 한다. “윙~” 하는 모터 소리는 끝내 들리지 않는다!!! 그런 상상을 해 본 적 있다. ‘농구’하는 마이크 타이슨(Michael Tyson), ‘탁구 선수’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 그리고 ‘축구 선수’ 이승엽…. 핵주먹으로 유명한 마이크 타이슨이 권투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어땠을까? 아마 다니던 고등학교 농구부 주장 눈에 띄어 농구를 하고 있었겠지? 짧은 팔과 짧은 목으로 코트를 휘젓고 다니는 타이슨이란 상상만으로도 재미나다. 슛 감각이 전혀 없어 매번 벤치에만 앉아 있다가 모처럼 얻은 기회를, 자꾸 성가시게 한다는 이유로 상대 선수 턱을 날려버린다! 아,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그래, 역시 마이크 타이슨은 권투 글러브를 끼는 게 맞고, 마이클 조던은 탁구 라켓 말고 농구공을 잡는 게 맞다. 누구나 자기에게 가장 맞는 게 있다. 음식도 그렇고 직업도 그렇다. 현실은 안 그런 경우가 많지만 말이다. 사실 ‘나’는 진짜 ‘내가’ 아니다. 나는 나를 잘 모른다고 해도 좋다. 사람은 보통 머리도 한 가지 스타일만 고수한다(나만 그런가?). 미장원에서 더 나은 헤어스타일을 권해 받아도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거절한다. 윗도리나 바지, 신발도 마찬가지다. ‘어울린다’기보다 ‘익숙하다’는 이유로 ‘나’는 어쩌면 ‘가짜(예전의 모습이나 상상의)’ 나로 붙잡아 두는지도 모르겠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런 식이니 어쩌면 나는 가장 적절한 내가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럼 가장 나다운 모습은 뭘까? 불교에서는 이것을 불성(佛性)이라고 한다. ‘가장 그 사람다운’, ‘그 사람만의’, ‘그 사람이라서 잘 할 수 있는…’ 그래서 ‘불성을 찾는다’고 표현한다. 가장 그 사람답고 그 사람이니까 가닿을 수 있는 본질을 찾는 일련의 과정을, 소[십우도(十牛圖)]로 표현하거나 붓으로 동그라미[일원상(一圓相)] 하나 덜렁 그려 표현하기도 한다. 전동 칫솔로 그냥 일반 칫솔질하듯 고개를 흔들어 댄 녀석은 엄마 아빠를 웃기려고 했던 퍼포먼스였다. 그러나 나는 얼마나 나를 잘 ‘사용’하고 있는지 하는 본질적인 질문을 끄집어내기엔 충분했다. 우리는 칫솔모 말고 칫솔 몸에다 치약을 짜지는 않는지, 밥 먹고 참말 하라고 있는 입으로 거짓말과 뒷담화나 하고 있지는 않는지…. 곧 부처님 오신날이다. 빨간색 전동 칫솔 하나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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