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으로 된 성벽
-기형도
저녁 노을이 지면神들의 商店엔 하나둘 불이 켜지고농부들은 작은 당나귀들과 함께성 안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성벽은 울창한 숲으로 된 것이어서누구나 寺院을 통과하는 구름 혹은조용한 공기들이 되지 않으면한걸음도 들어갈 수 없는 아름답고신비로운 그 성어느 골동품 商人이 그 숲을 찾아와몇 개 큰 나무들을 잘라내고 들어갔다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본 것은쓰러진 나무들뿐, 잠시 후그는 그 공터를 떠났다농부들은 아직도 그 평화로운 城에 살고 있다물론 그 작은 당나귀들 역시
-자연, 그 잃어버린 신전(神殿)을 찾아서한 번씩 기형도의 거리의 시편들보다 자연의 시가 더 끌릴 때가 있다. 그도 시작 메모에서 “가장 위대한 잠언이 자연 속에 있음을 믿는다”라는 말을 남겼다. 시인은 저녁 노을이 진 저녁 시간에 “神들의 商店”에 “하나둘 불이 켜지고/농부들”이 “작은 당나귀들과 함께/성 안으로 사라지는” 신성한 저녁의 시간을 읽는다. 농부와 당나귀들이 숲으로 된 그 성에 들어갔다는 건 그들이 “寺院을 통과하는 구름”과 “조용한 공기들”과 같이 자연의 식구라는 말이다. 그 장면을 본 시인 역시 농부나 당나귀들처럼 ‘나무들의 다정한 家臣’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여기서 숲으로 둘러싸인 성은 현실의 모순과 분열 저 편에 존재하는 성스러운 영역이다. 그 성이, 함부로 나무를 베어내는, 자본주의적 삶에 기초를 두고 있는 “골동품 商人” 같은 인물들에게 보일 리가 없다. 그 상인이 “쓰러진 나무들” 외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했는데도, 시인은 다시 힘주어 말한다. “농부들과 나귀들은 아직도 그 평화로운 城에 살고 있다”고. 본질적인 건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다. 그건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 근대 이후 인간과 자연이 존재론적인 분리를 경험하게 되면서 숲의 아름다움과 평화, 신비를 잃어버리고 우린 너무 현실에 절여진 눈과 무거운 몸뚱어리를 갖게 되었다. 이 시는 자신이 갖고 있는 쓸모없는 껍데기를 버리고, 자연 속에서 잃어버린 낙원의 신비적 질서에 동참하라고 우리에게 권유한다. 그 껍데기를 벗어버린다면, 예수의 말처럼 낙타가 바늘귀인들 못 들어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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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은 시인 약력경북 안강 출생. 1987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95 매일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시집 『두 힘이 숲을 설레게 한다』, 『눈먼 새를 다른 세상으로 풀어놓다』, 『고요 이야기』, 저서 『서정주 시의 시간과 미학』외 7권, 1996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경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