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제338호 금관이 발견된 신라무덤 ‘금령총(金鈴塚)’이 94년 만에 다시 발굴돼 무덤 주인이 밝혀질지 주목된다.
금령총은 부장품 가운데 특이한 금제 방울이 들어 있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일제강점기인 1924년 발굴된 바 있다. 문화재청은 지난 11일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위원회 심의 결과 노동동 264번지 일원 내 금령총 발굴 허가 신청안건이 관계 전문가 현지자문을 조건으로 가결됐다고 밝혔다. 내달 열리는 매장문화재분과위원회 심의를 거친 뒤 발굴이 본격 추진될 예정이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경주박물관 등은 매장문화재분과위 심의 결과에 따라 이르면 5월 말 금령총 일대 면적 5240㎡에 대해 발굴을 시작해 12월까지 전면적인 조사를 완료할 예정이다. 일제강점기 때 발굴됐던 신라무덤에 대한 재발굴은 2015년 금관총, 2016년~2017년 서봉총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금령총은 1924년 5월 조선총독부 직원이었던 우메하라스에지에 의해 발굴 조사됐다. 신라 돌무지덧널무덤 구조가 처음으로 밝혀진 무덤으로, 고분의 연대는 6세기 초로 추정되고 있다. 당시 금령총에서 발굴된 금관(보물 제338호)과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국보 제91호)는 세간에 이목을 집중시켰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금령총 금관은 신라고분에서 금관총에 이어 두 번째로 출토된 것으로 지름이 15cm에 불과하다. 관테에 나뭇가지 모양의 출자형[出]장식이 4단으로 제작된 것이 3단으로 만들어진 다른 금관과 구별된다. 또 형태가 작고 곱은옥이 생략돼 있어 다른 금관보다 단순한 느낌을 준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는 신라 문화를 대표하는 유물이다. 주인과 하인으로 보이는 인물이 각각 말을 탄 모습으로, 말 탄 사람의 의복과 각종 말갖춤이 사실적으로 표현돼 신라인의 생활상을 알려주는 아주 중요한 자료다. 이 역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금령총은 발굴되기 이전에 이미 크게 파손돼 남북 길이 약 13m, 높이 약 3m의 반달형으로 남아 있지만 봉분 크기는 바닥 지름 약 18m, 높이 약 4.5m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무덤의 돌무지 직경은 약 9m이며 표면은 점토대로 덮여 있다. 덧널 바닥은 지표 아래 3m에서 나타났는데 무덤구덩이의 바닥에 냇돌과 자갈을 약 45㎝ 두께로 깔아 만들었다. 지하에 동·서로 긴 구덩이를 파고 거기에 길이, 너비, 높이가 4.8×2.5×1.5m의 상자형덧널을 넣고 그 안에 길이와 폭이 1.5×0.6m의 나무널[木棺]을 동·서 방향, 머리를 동쪽에 두는 동침(東枕)으로 안치했다. 나무널의 내면은 투조금동판으로 장식했고 그 주변에 부장품을 매납했다.
나무널 안에는 피장자가 착용했던 4단 출자형(出) 금관을 비롯한 각종 장신구와 의장세고리자루장식의 나무로 된 큰칼이 출토됐다. 나무널 주위에는 철제이기 등 각종 유물들이 널려 있었다. 특히 나무널의 동편 머리맡에는 길이와 너비가 1.8×0.8m의 부장품구역이 설정돼 있었고, 이곳에 각종 귀금속제용기와 유리용기, 칠기류, 각종 마구, 토기류가 집중 발견됐다. 이 밖에도 금령총에서 출토된 부장품은 장신구로는 그림이 그려진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채양과 관모, 금동제 신발, 은제 허리띠와 띠드리개가 있다. 또 금동장안장틀과 발걸이 등 각종 마구, 금동장고리자루칼, 금은장소도 및 각종 철제무기가 출토됐다. 용기류는 금동제합, 쇠솥, 각종 그림이 그려진 칠기, 유리잔 2개가 출토됐다.
토기류는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를 비롯해 배모양 토기 등 특수형 토기와 장식 토기가 모두 11점 출토됐다. 이같은 장식 토기와 특수형 토기는 신라고분 중 단일고분으로는 가장 많고 가장 다양하게 출토된 것. 또한 청동제 거울도 1점 출토됐다. 하지만 무덤의 주인공을 밝힐 수 있는 단서는 당시 출토 되지 않았으며, 출토된 장신구가 대체로 소형인 점으로 보아 피장자는 나이 어린 왕족으로 추정된다. 박물관 측은 금령총 발굴을 통해 △일제강점기 조사된 금령총 발굴조사에 대한 재검토와 고분 주변의 부가시설 및 타 고분과의 관계 확인△고분 복원 및 고분군 주변의 경관 복원에 필요한 기초자료 수집 △추후 경주지역 내 신라고분 조사에 필요한 로드맵 등을 제시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