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은 가장 귀한 금속이다. 그래서 부처님을 금인(金人) 또는 금선(金仙)이라고 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금구(金口), 부처님을 모신 건물을 금당(金堂)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때 선종이 성행한 이후 금당 대신 법당이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이웃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아직도 금당이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불상을 금으로 제작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였다. 그래서 구리나 청동으로 불상을 조성 한 다음 금으로 도금을 한다. 금이 귀해서 그런 것만 아니고, 그보다는 순금으로 불상을 조성하기가 매우 어렵고 까다롭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경주에서 발견된 순금 불상은 이곳 황복사지 삼층석탑에서 출토된 단 2구 뿐이다. 두 번째 순금불상으로 알려졌던 나원리 5층 석탑의 불상은 나중에 금동불상임이 드러났다. 1942년 이 탑을 해체해 복원할 때 2층 지붕돌[옥개석(屋蓋石)] 안에서 금동사리함이 발견됐다. 뚜껑에는 1cm 크기의 음각 해서체로 새겨진 명문이 있었는데 효소왕 원년(692년)에 왕이 어머니인 신목태후와 함께 아버지 신문왕을 위해 3층 석탑을 건립하였다고 했다. 이때 순금여래입상을 탑 속에 봉안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33대 성덕왕 5년(706)에 6치[寸] 크기의 순금으로 된 아미타여래상 1구와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 및 불사리(佛舍利) 4과를 함께 넣었다고 하나, 실제로 발견된 유물은 좌상의 불상과 그 이전에 넣은 입상의 불상을 비롯해 은과 동의 고배(高杯), 많은 유리구슬, 팔찌, 금실 등의 유물이 함께 들어 있었다.
순금여래좌상은 아미타여래인데 6치라는 기록과는 달리 실제 크기는 12.2㎝로 4치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다른 공양품들은 명문의 내용과 대체로 일치하지만 그동안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최근 석탑 보수에 참여했던 분의 증언을 통해 대나무로 엮어 만든 경전의 존재가 확인됐다. 이에 현재까지는 이 황복사지 삼층석탑이 『무구광정대다라니경』을 봉안한 우리나라 최초의 탑이다.
이곳 삼층석탑이 ‘구황리 삼층석탑’에서 ‘황복사지 삼층석탑’으로 개명을 했음에도 이 석탑에서 발견된 불상 2구는 문화재청에 각각 ‘구황동 금제여래좌상’, ‘구황동 금제여래입상’으로 등록돼 있다. 국보 제 79호로 지정된 금제여래좌상은 신광과 두광이 합쳐진 광배(光背)와 불신(佛身), 대좌(臺座)의 3부분으로 되어 있으며 각 부분은 분리가 된다. 민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肉髻)]가 큼직하게 솟아 있으며, 얼굴은 전체적으로 둥근 편이다. 미소를 띤 얼굴에 눈·코·입은 뚜렷하고 균형이 잡혀 있다. 어깨는 넓고 당당하며, 양어깨를 덮은 대의는 가슴을 크게 벌리고, 그 안에 대각선으로 내의를 걸쳐 입었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에 흘러내린 옷자락은 좌우대칭으로 정돈돼 길게 늘어져 있다. 오른손은 어깨 높이로 들어 손바닥을 보이고 있고, 무릎 위의 왼손은 손끝이 땅을 향하도록해 손등을 보이고 있다. 두광은 연꽃무늬를 중심으로 인동초·당초무늬·덩쿨무늬를 새기고, 그 가장자리에 불꽃 무늬가 맞뚫림조각[투각(透刻)]돼 있고, 신광은 인동초·당초무늬와 덩쿨무늬를 이중으로 뚫을새김했다. 대좌는 원형이며 엎어 놓은 연꽃무늬[복련(覆蓮)]가 새겨져 있다. 국보 제80호로 지정된 금제여래입상은 광배와 대좌를 모두 갖추고 있으며, 민머리에 육계는 높지 않으나 큼직하다. 머리 뒤에는 보주형(寶珠形) 두광이 꽂혔는데, 한가운데 연꽃을 중심으로 불꽃 모양이 정교한 맞뚫림조각으로 돼있다. 얼굴은 갸름한 편이나 두 볼에 살이 올라 있고, 눈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으며 콧날은 날카롭고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고 있다. 목에는 삼도가 없고 어깨는 약간 좁은 편이다. 양어깨와 앞가슴을 모두 덮은 통견(通肩)의 법의는 매우 투박한 느낌을 주며, 상의 정면을 축으로 하여 여러 겹의 U자형 주름이 나 있고, 치마[군의(裙衣)]의 밑은 좌우로 약간 퍼져있다.
오른손은 시무외인(施無畏印)을 취하고, 왼손은 옷자락을 움켜쥐고 있다. 대좌는 따로 만들어 끼운 것으로 겹겹의 연잎이 아래로 향한 연화대좌로 그 밑에 다시 12각의 받침이 붙어 있다. 이 두 불상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언젠가는 고향인 경주로 돌아와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