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tunnel)의 사전적 의미는 ‘산, 바다, 강 밑을 뚫어 굴로 된 철도나 도로’입니다. 곧잘 우리는 암흑같은 터널을 인생의 고통과 시련에 비유합니다. 인생의 길고 험한 여정을 빗대어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난다고 하는 것이죠. 그 여정의 끝을 빠져나오며 새롭게 맞이하는 인생의 국면에는 희망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구요.
한식을 지난 봄날은 아직 바람이 찼습니다. 경주시내권에서 지척(석장동 부흥마을의 장군교 끝자락)인 곳에 지금은 기차가 통과하지 않는 폐터널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달음에 ‘충효 제1터널’을 찾았습니다.
2000년 구 대구선 철교 교각이 자전거 도로와 인도로 다시 태어난 장군교를 지나자마자 작은 동산을 머리에 이고 있는듯한 터널이 나타났습니다. 터널의 양옆으로는 얼마 남지 않은 매화꽃잎들이 흩날리고 있었고 연한 연두잎들이 막 돋아나고 있었습니다. 터널의 길이는 정확하게 80M라고 하니 제법 긴 터널인 셈이지요.
현재 재정경제부(재경부) 자산관리공사 소유인 이 터널은 대부(貸付)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1950년 이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 주민이 대부를 하고 있었는데, 창고용도로 사용해서 터널 중간을 막아 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은밀한 동굴 같은 터널을 걷는 즐거움은 누릴 수 없었습니다. 장군교를 지나 등산로로 이어지는 길목에 있어서 비교적 접근성이 좋아 청도의 명소인 와인터널 같이 활용하라는 제의도 많이 들었다고 합니다.
김호연 화백과 저는 비교적 낮은 야산으로 보이는 지형인데 굳이 터널을 뚫었던 것이 의아해졌습니다. 아마도 일본인들이 근처에 있는 김유신장군묘와 연관지어 민족의 맥을 단절하려는 의도가 있었으리라는데 생각을 모았습니다.
1942년 이 터널이 개통됐다고 합니다. 당시 열차는 이 터널을 지나 장군교를 지나 경주역을 지났다고 하는데, 이곳으로 기차가 다니지 않은 것은 1987년부터였다고 합니다.
당시 일본인이 만든 시설로, 옹벽과 터널에는 철근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다고 합니다. 온전히 콘크리트로만 만든 것이죠. 국가시설이기 때문에 수시로 터널내부와 옹벽의 안전도 검사를 했는데 아직까지 미세한 균열이 한 군데도 일어나지 않은 견고함을 자랑했다고 하네요. 지금 만들어진 여느 터널에 비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단단하게 지은 것이라지요.
여름철에는 터널 입구에만 가도 시원할 정도라고 합니다. 실제로 터널 안은 서늘한 냉기가 흘렀고 김 화백과 나누는 대화에는 자연스레 ‘에코음’이 연출됐습니다. 폐터널이 연출하는 색다른 풍경이 우리 지척에도 있다는 것이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바로, ‘오늘의 경주’에서 말이죠.그림=김호연 화백글=선애경 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