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千의 날과 밤 -다무라 류우이찌 한편의 시가 태어나기 위해서는우리들은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숱한 것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숱한 사랑하는 것을 사살하고 암살하고 독살해야 한다보라,四千의 날과 밤 하늘에서한 마리 새의 떨리는 혀가 탐나서四千의 밤의 침묵과 四千의 날의 逆光線을우리는 사살했다들으라,비 내리는 모든 도시, 용광로한 여름의 방파제와 炭抗에서굶주린 한 아이의 눈물이 있어서四千의 날의 사랑과 四千의 밤의 연민을우리들은 암살했다기억하라,우리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우리들 눈에 들리지 않는 것을 듣는한 마리 들개의 공포가 탐나서,四千의 밤의 상상력과 四千의 날의 차가운 기억을우리들은 독살했다한편의 시를 낳기 위해서는우리들은 그리운 것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이것은 死者를 소생시키는 오직 하나의 길이다우리들은 그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죽이고 암살하고 독살하고 난 뒤에야 태어나는 한 편의 시 이 시를 정신이 느슨해질 때마다 꺼내 읽는다. 이 시인은 ‘한편의 시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우리들은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숱한 사랑하는 것, 그리운 것’을 죽이고 암살하고 독살하라고 역설한다. 거기엔 ‘四千의 밤의 침묵과 四千의 날의 逆光線’ ‘四千의 날의 사랑과 四千의 밤의 연민’ ‘四千의 밤의 상상력과 四千의 날의 차가운 기억’이 들어 있다. 밤의 내밀한 고요와 황혼 무렵 우리의 눈을 뜨지 못하게 하는 역광의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데? 날마다 돋아나는 옛 시절의 그리움과 사랑, 그리고 눈물은 또? 그런데 이런 것을 죽이라고? 죽인다는 것은 생명을 끊어버리는 것이고, 암살은 대상 몰래 죽이는 것이며, 독살은 독을 써서 죽이는 행위다. 시인은 왜 이런 의도적이고도 가혹한 말을 하는 것일까. 이 시인이 추구하는 시란 무어란 말인가. 시인은 ‘내가 알고 있는 굶주림’, ‘내가 알고 있는 공포’(보이지 않는 나무)를 죽이고, 우리 마음의 지평에는 없는 ‘굶주린 한 아이의 눈물’을, ‘한 마리 들개의 공포’를 그리라고 한다. 그것이 ‘死者를 소생시키는’ 길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럴 듯해 보이는 ‘四千 날’의 습관과 타성적인 인식으로부터의 결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손진은 시인 약력경북 안강 출생. 1987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95 매일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시집 『두 힘이 숲을 설레게 한다』, 『눈먼 새를 다른 세상으로 풀어놓다』, 『고요 이야기』, 저서 『서정주 시의 시간과 미학』외 7권, 1996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경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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