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제정돼야 할 조례가 오히려 주민 간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8월 경주시의회는 폐기물처리시설 설치촉진 및 주변지역지원 등에 관한 조례를 일부 개정하는 조례안을 발의했다. 조례 개정이유는 주민협의체 주민대표 구성 인원을 증원해 주변영향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 원활한 주민지원협의체 운영을 위해서다. 개정 주 내용은 기존 8명이던 폐기물처리시설 주민지원협의체 인원을 10명으로 개정한다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주민지원협의체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개정된 조례가 오히려 주민갈등의 원인이 돼 협의체 구성도 가로막고 있는 실정이다. 이 조례 개정으로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이어져 오던 주민지원협의체를 구성조차 못하고 있다.#주민이 원한 조례 개정? 경주시폐기물처리시설 주민지원협의체는 주변영향지역 내 주민대표와 시의원, 전문가로 구성된 단체로 전체 13명(주민대표 8명, 시의원 3명, 전문가 2명)으로 2년 임기다.
폐기물처리시설로부터 거리, 환경 영향의 정도, 주민 수 등을 고려해 시장과 시의회와 협의해 정원 중 주민대표가 반 이상이 되도록 구성된 협의체는 2001년부터 지난해 7월 8기까지 주민대표 8명(월성동 5명, 보덕동 3명)으로 구성돼 운영됐다. 폐기물처리시설이 설치된 곳에서 영향 지역(2km) 내 인구는 월성동이 1800여 명으로 보덕동 500여 명보다 3배 이상 많아 월성동에서 위원회 5명, 보덕동에서 위원회 3명으로 구성됐다.
하지만 일부 보덕동 주민이 천군매립장에 더 가까워 환경적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며 협의체 인원 3명을 월성동과 같은 5명으로 증원을 요구했다. 해당 소속 시의원이 주민 요구를 받아들여 조례 일부개정이 이뤄졌다.
조례가 개정된 후 주민지원협의체는 2017년 7월 임기로 만료돼 새로운 협의체를 구성하려 했다. 하지만 조례가 개정됐다며 위원회 인원을 3명에서 5명으로 증원하자는 보덕동 주민과 우선 3명으로 협의회 구성 후 증원 여부를 결정하자는 월성동 주민 간 대립으로 8개월 동안 구성이 미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협의체 미구성으로 지원 끊긴 경로당 주민지원협의체가 구성되지 못하자 그동안 협의체 의결로 이뤄지던 모든 지원과 사업이 멈췄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 주민들에게 돌아왔다.
우선 주변 지역 경로당에 분기별로 지원되던 물품 지원 사업이 중단됐다. 해당지역 13개 경로당에 매달 라면, 쌀, 생필품 등 40만원에 달하는 물품 지원이 끊어지자 해당 경로당 회원들의 불만이 커졌다. 또한 주민지원기금 운영관리위원회가 열리지 않아 협의체 사무실 요금, 차량유지비 등 필수 경비를 제외한 주민감시원 고용과 주민화합 잔치 등의 사업이 모두 중단됐다.
시 관계자는 “협의체가 구성되지 않아 전체 예산 중 필수 경비를 제외하고 전액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어쩔 수 없이 변호사의 자문을 얻어 일부 비용을 사용하고 있다”면서 “협의체 위원들에게 협의체 구성을 요구하고 있지만 위원들 사이에 협의체 구성 인원수를 둘러싼 의견 차이로 대화가 단절된 상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보덕동이 위원회 인원 5명을 요구하며 협의체 구성을 미루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덕동에서 추천된 위원은 보덕동 주민이 폐기물소각장과 가까워 피해 정도가 크기 때문에 협의회 구성 시 월성동과 같은 인원 배정을 요구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보덕동이 폐기물소각장과 가까워 피해가 크다는 이유를 내세우지만 그동안 폐기물소각장을 운영하면서 적립된 기금의 사용 때문이라는 관측이다. 그동안 폐기물소각장을 운영하면서 지역주민에게 쓸 수 있도록 적립된 예산이 100억 가까이 모인 상황이다. 지난해에는 적립금 가운데 10억 이상을 주민협의체 협의를 거쳐 친환경에너지타운 조성에 쓰이기도 했다. 100억의 적립금이 조성되자 그 사용처를 두고 소각장과 가까운 지역인 보덕동과 인구가 많은 월성동 간 보이지 않는 힘 싸움이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주민협의체 관계자는 “주민협의체가 구성돼야 하는데 위원들이 보덕동 5명과 월성동 5명을 주장하는 쪽과 기존 상태를 유지하자는 쪽 의견이 팽팽해 협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당분간 협의체 구성은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