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神)이 사람에게 가장 공평하게 주어진 것이 있다면 시간과 선거권을 들 수 있다. 시간을 얼마나 잘 활용하고 목적한 바를 위해 노력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제각각이다. 민주주의에서의 선거권도 부와 권력, 그리고 명예에 관계없이 한 사람마다 한 표씩 주어져 있기에 어떤 사람을 선택하느냐가 미래를 결정한다. 요즈음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출마 희망자들은 앞 다투어 예비후보자 등록을 하고 선거사무소를 개소하고 있다.
민주주의(democracy)의 어원은 민중(demos)과 지배(kratos)의 합성어로, ‘민중에 의한 지배’라는 뜻을 나타낸다. 이는 모든 사람이 보장받아야 할 인간의 존엄성, 자유, 평등을 기본 토대로 하는 정치 형태이기 때문에 오늘날 가장 우월한 정치 형태로서 널리 정착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민주주의 기원은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도시국가인 아테네에서 찾을 수 있다. 근대 민주주의를 확립시킨 것은 17세기에 들어서 영국이 처음이다.
의회민주주의와는 조금 다르지만 우리의 역사에서도 찾을 수 있다. 중국의 『신당서(新唐書)』 신라전에는 “(신라는)나라에 중요한 일이 있으면 여러 사람과 의논해 결정한다. 이를 화백(和白)이라 했으니, 단 한 사람이라도 이의(異議)가 있으면 그만 두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수서(隋書)』 신라전에도 “나라에 큰일이 있으면 여러 관리를 모아 상세히 의논한 다음에 결정 한다”고 하였다. 대체로 『삼국사기』와『삼국유사』에 기록된 알천안상(閼川岸上)에서 6부족장과 그 자제들이 박혁거세를 추대한 기사를 화백회의로 보고 이 땅의 민주주의 원형으로 보고 있다.
오늘의 경주를 일컬어, 이곳에서 태어나 고향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나 타지에서 들어와 살고 있는 시민이 이구동성으로 배타적이며, 출신지와 성씨, 그리고 학연을 따지는 폐쇄성이 강한 도시라고 한다. 심지어는 5명만 되면 끼리끼리 모여 모임을 만드는 계중(단체)천국이라고 비꼬는 사람도 있으니 그만큼 소통과 화합이 어렵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도시의 성격은 선거철만 되면 더욱 두드러져서 온갖 구실로 연줄을 가져다 붙이곤 한다. 시민들은 또 선거 때마다 소신껏 판단하여 제대로 된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고서 나중에 이렇다 저렇다 뒤 담화를 쏟아내고 있는 실정이다.
도지사와 시장, 도의원, 시의원, 도 교육감·교육위원을 선출하는 이번선거에 출마하는 면면을 보면 “지역을 위해서 일꾼으로서 열심히 하겠다” 또는 “확 뜯어 고치겠다”는 말만 상투적으로 하고 있다. 재출마하는 현직들도 구체적인 실적에 대한 공과 보다는 자기가 적임자임을 내세우기에 급급하고 새롭게 도전하는 후보자들도 전임자에 비해서 어떻게 하겠다든가 출마 선거구에 대한 뚜렷한 미래 청사진을 내 놓고 있지 않고 있다. 아마도 정식 후보로 등록하면 그 때서야 공약을 발표하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저 명함에 사진과 출신학력, 각종 단체의 경력만 빼곡히 나열하고 구체적인 역할과 공과는 부실하니 답답하다.
이처럼 얼굴 내기식과 경쟁자 간의 비난 열기를 우려했던지 며칠 전 모 정당 위원장은 공천을 희망한 도·시의원 50여 명과 간담회를 가지고 “공정하고 투명한 공천을 통해 경주발전을 이끌 수 있는 최고 적임자를 가릴 것”이라고 공언했다. 사실 지역 정서로 보아 ‘제 1 야당 공천을 받으면 당선’이라는 공공연한 여론을 등에 업고 공천에 사활을 걸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공천권을 쥐고 있는 당이나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회의원은 달라진 정치 현황과 변화된 유권자의 속내를 잘 읽고 있는지 의문이다.
세간에 떠도는 현직 70% 물갈이나 2년 후의 표를 의식한 내사람 공천이라는 말들은 루머이길 바란다. 선거 때마다 선거구 획정이 제각각이어서 이에 대한 시민들의 의구심도 풀어야 하고 시민 대통합을 위한 인재 발굴, 직능별 전문직을 등용한 공천이 참으로 절실한 때이다. 이제부터는 진정으로 경주의 미래를 내다보는 거시적 관점에서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을 공천하고 유권자도 모든 연줄을 배제한 채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야 한다. 현재 경주의 예비후보자 등록 현황을 보면 경북도지사에 3명, 경주시장에 6명, 경북도의원에 8명, 경주시의원에 58명이 등록하였다. 시장은 차치하고 시의원의 경우 가·마선거구에는 각각 9명이나 등록해 언제부터 경주를 위한다는 사람들이 이만큼이나 많았나 싶을 정도이다. 아직까지 예비후보자 등록을 하지 않고 공천만 신청한 잠재적 후보자까지 합산하면 숫자는 훨씬 늘어날 것이다. 물론 4월에 예정된 각 당의 공천이 끝나고 정식으로 후보자등록을 시행하면 양상은 달라질 것이다.
도 교육감과 교육위원을 제외한 75명의 예비후보자등록 면면을 보면 시사하는 바가 있다. 먼저 예비후보자 전과 기록을 보면 도지사 2명이 각각 2건, 시장 2명이 각각 2건과 1건이다. 도의원은 2명이 각각 2건이며, 1명은 1건이다. 시의원의 경우 31명이 무려 13건, 10건에서 1건까지 분포를 보이고 있다. 물론 전과가 선출직 출마에 결격사유가 되거나 당선 후의 능력에 대한 척도는 아니지만 후보자를 판단할 수 있는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유권자에게는 작으나마 참고가 될 것이다. 도덕적 흠결이 중요시 되는 때에 이러한 전과가 어떤 유형의 것인지, 비록 전과는 아닐지언정 사회적 지탄의 행실은 없었는지도 꼼꼼히 살펴볼 일이다. 특히 도지사와 시장직 선거 홍보를 하면서 예비후보 등록을 미루고 있는 거물급 잠재 후보자의 경우에도 앞으로 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나 공보지에 공개될 때 반드시 검토할 책임이 유권자에게 있다.
우리 땅에서 민주적인 청치가 시작된 신라, 경주의 유서 깊은 고장에서 고향 구분 없이 경주를 위해 일해 온 사람, 재력유무 보다는 깨끗한 사람, 똑똑하기 보다는 지혜로운 사람, 학벌 보다는 능력 있는 사람을 골라 나의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를 소망해 본다. 4년 후의 경주가 아니라 50년 100년 후의 살기 좋은 경주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