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당(霽堂) 배렴(裵濂, 1908~1968)은 경상북도 금릉(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있었던 지명)에서 태어났다. 서울로 올라가 서학 공부를 시작했으며 1929년 18세에 청전(靑田) 이상범(李象範, 1897∼1972)에게 본격적으로 전통화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광복 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가 결정되자 그 산하 조선문화건설 중앙협의회 미술위원, 조선미술건설본부 동양화부 회원, 조선미술협의회 상임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또한 청구미술원, 조선사화동연회, 대한민국전람회 심사위원을 지냈다. 1954년에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됐다. 1965년부터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그는 1929년 10월, 제9회 서화협회전람회에 처음 〈만추(晩秋)〉를 출품한 뒤 1936년 서화협회의 마지막 전람회까지 해마다 출품했다. 1930년부터는 조선미술전람회에도 출품하여 입선과 특선을 받았다. 이 시기의 전람회 출품작들은 전적으로 스승인 이상범을 본받은 수묵 담채(水墨淡彩:빛이 엷은 먹물과 엷은 채색)로 향토적 풍경을 주로 묘사한 것들이었다. 1940년에는 서울의 화신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다. 이때부터는 스승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자적이고 개성적인 화풍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남종화(南宗畵)가 가진 짙은 분위기를 수묵으로 연출하면서 관념적인 구도를 벗어나 단아한 분위기를 중시하는 새로운 한국 산수를 모색했다. 그의 상당수의 작품은 관념적인 산수화풍과 실재하는 실경을 복합적으로 구사해 실경산수를 연구하는 후진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현재 전시 중인 작품〈원수귀범(遠水歸帆:긴 여정에서 돌아오는 배)에서 강 건너의 멀리 있는 풍경을 흐릿하게 처리하고 가까운 풍경을 강하게 표현해 공간감을 연출한 것은 원나라 시대의 4대가들이 즐겨 사용하던 구성방식이다. 이런 방식은 비교적 전통적인 구도에 속한다. 소나무, 배 등에서 상당부분 조선시대 말엽 전형적인 남종산수화의 관념적 화법을 따르고 있다. 특히 소나무 처리는 남종화의 경향이 강하게 반영돼있다.제공=김아림 (재)경주문화재단 예술지원팀 차장, 경주예술의전당 알천미술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