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중생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이다. 중생사는 창건과 그 이후의 연혁이 전해지지 않고, 언제 폐사되었는지도 알 수 없다. 1940년대에 옛터에 현중생사를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은 법당과 삼성각, 요사 2동이 있고, 유물로는 보물 제665호로 지정된 낭산마애삼존불상이 있고, 팔각원당형불좌대(八角圓堂型佛座臺)와 옥개석을 비롯한 석탑 부재, 주춧돌 등이 다수 남아 있다. 주변의 유물로 보아 상당한 사격(寺格)을 갖춘 사찰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벽체가 없는 맞배지붕의 보호각 속에 있는 낭산마애삼존상의 본존을 학계에서는 지장보살로 보고 있다. 앞에 세워둔 안내판에도 본존을 지장보살로 소개하고 있다. 본존인 지장보살은 얕은 감실 속에 부조로 조각되어 있다. 머리는 소발(素髮)인지 두건을 쓴 형태인지 분명하지 않고, 둥글고 비만한 얼굴은 광대뼈가 나오고 살짝 미소를 띤 매우 독특한 모습이다. 어깨는 넓으나 목이 짧아 움츠린 자세이다. 옷은 통견으로, 왼쪽 어깨 위에서 한 번 뒤집혀 있고, 드러난 가슴에 두 줄의 옷주름 선이 비스듬히 표현되었다. 군의(裙衣)를 묶은 띠매듭이 보이며, 이 군의가 두 무릎을 덮어 발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두광과 신광을 둥근 선각으로 표현하였다.
좌우의 협시상들은 탈락이 심하다. 한 발은 안쪽으로 접고 다른 발은 약간 편 자세[유희좌(遊戱坐)]로, 갑옷을 입은 무장(武將)의 모습이다. 머리 부분은 마멸되어 잘 알 수 없지만, 본존상과 마찬가지로 얼굴은 광대뼈가 나오고 눈이 부리부리하며 입은 꼭 다물고 있다. 목은 본존과 같이 거의 드러나지 않으며 목 주위에는 신장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Ω형 옷깃이 표현되어 있다. 오른쪽 상은 칼을 잡고 있으며, 왼쪽 상의 지물(持物)은 탈락이 심해 알아 볼 수 없다. 이 협시상들은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든 것으로 보아 신장상인 듯하다.
지장보살은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사바세계에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고통 받는 중생을 구제하여 그들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토록 하는 부촉(付囑)을 받았다. 지장보살의 하화중생(下化衆生)에 대한 서원은 지옥문까지 이르러 명부시왕의 무서운 심판으로부터 인간을 구하는 데까지 이른다. 지장보살의 모습은 일반 불상과는 약간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즉 머리는 두건을 쓰거나 삭발한 승려형의 2가지이고, 한 손에는 석장을 짚고 있다.
사찰 내에서 지장보살을 모신 전각은 지장전, 명부전, 시왕전 등인데, 중앙에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왼쪽에 도명존자(道明尊者), 오른쪽에는 무독귀왕(無毒鬼王)을 봉안하고 그 좌우에 명부시왕·동자·판관 2인·녹사 2인·장군 2인을 ㄷ자형으로 배치한다.
따라서 낭산마애삼존불 주존이 지장보살이라면 협시는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어야 한다. 도명존자는 스님, 무독귀왕은 문관 또는 왕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그런데 이 협시상은 무장을 하고 있다. 이런 형태의 삼존상은 그 사례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 불상의 조성 시기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신라 하대인 9세기경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주에는 이곳 이외에 금강산 남동 기슭에 마멸이 심하여 식별이 어려우나 지장보살상이 분명한 마애불상이 있다.<본지 16.11.17. 하성찬 전 교장의 경주이야기(36) 참조>
선(禪)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한 사람이 어느 선사(禪師)를 찾아왔다. 자기가 아는 것을 털어놓으며 떠들고 있는 동안 선사는 조용히 찻잔에 차를 따랐다. 차가 찻잔에 가득 차고 드디어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그 손님이 차가 넘친다고 하자 선사는 드디어 말했다.
“그대가 비어있지 않은데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중생사니 현중생사니, 지장보살상이라느니 또는 다른 상이라느니. 너무 알려고 하지 않아야 할 것 같다. 마음을 비우고 다시 경내를 둘러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