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관(南寬, 1911∼1990)은 경상북도 청송에서 태어났다. 도쿄 다이헤이요(태평양, 太平洋)미술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서 광복 직후까지 작가로 활동했다. 귀국해 서울에 정착해서는 이쾌대, 이인성 등과 1947년 조선미술문화협회를 결성하였으며, 1949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추천작가 반열까지 오르게 됐다. 1952년 ‘제1회 일본국제미술전(도쿄비엔날레)’과 ‘파리의 살롱 드메 동경전’을 보고 난 후 프랑스 파리행을 결정하게 된다. 1954년, 그는 프랑스로 건너간 첫 한국 화가다. 남관은 프랑스에서 권위 있는 ‘5월 살롱전(Salon de Mai)’에 초대됐고, 마침내 1966년 프랑스의 망통 비엔날레 회화 부분에서 대상을 차지하며 한국 회화를 세게 무대에 알린 국제적인 작가가 됐다. 그리고 1989년에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됐다. 그는 초기에는 캔버스 위에 유채물감을 두텁게 칠하고, 콜라주(Collage)하는 다양한 효과를 만들어 냈다. 프랑스 활동 후 한국 정서가 추가된 현대적인 추상기법을 터득하게 됐다. 발묵(發墨, 엷은 먹그림에 짙은 먹을 더해 그리기), 뿌리기, 붙이기, 떼내기 등 동서양의 기법들을 망라하게 된다. “난 정신세계에서 사실적인 방법을 추구한다. 때문에 내 그림은 추상적이고 편을 드는 것도 비구상으로 분류하는 것도 불만이다. 동양화, 서양화, 구분하는 것도 못마땅하다. 사실 나는 어느 파에서 속하지 않는다. 굳이 말하지만 나는 내 나름의 ‘남관파’” -남관- 그의 말처럼 동양화도 서양화도 추상, 구상도 아닌 독자적인 그의 작품은 신비스러운 아우라를 풍긴다. 현재 전시 중인 남관의 1983년작 <무제> 또한 푸른 색채 속에 문자 형태들이 어우러지게 화면에 구성됐다. 그의 작품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문자와 고대 문명에서 나온 무늬이다. ‘문자와 무늬’는 주제가 되어 형태를 뚜렷하게 부각시켜 배치하는 것에 따라 다른 화면이 되고 이는 보는 시각마다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제공=김아림 (재)경주문화재단 예술지원팀 차장, 경주예술의전당 알천미술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