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복고’와 연애 중입니다. 한때의 유행 같지는 않은 시류이긴 하지만 ‘다방’이라는 말에도 향수(鄕愁)가 질펀하게 배여 있습니다. 요즘은 ‘다방’ 간판을 구경하기조차 쉽지는 않죠. ‘다방커피’라는 메뉴도 어딘가 촌스러움이 덧칠돼 있는 말인 것 같군요. 경주에서 가장 오래된 다방이 노서고분군이 인접한 문화의 거리 네거리 모퉁이에 있습니다. 추억 속에만 남아 있을 법한 청기와 다방이 중노년층의 향수를 자극하면서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것입니다. 다방치고는 품격이 높아 뵈는 젠틀한 영국신사 같은 외관입니다. 건물 외관을 봐선 현대식 건물이지만 멀리서 보면 녹슬은 함석지붕을 이고 있어 겨우 시간성을 짐작 할 수 있습니다. 1950년 중반에 문을 열었다는 이 다방은 60년을 훌쩍 넘어 지금도 건재한 편이지요. 어릴적 보았던 가게가 청장년이 되어서도 그곳에 있어서 여전히 사랑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황홀한 일일까요? 유럽 어느 나라에서든 100년, 200년 된 오래된 까페를 찾기는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경주는 그야말로 오래된 도시 아닌가요. 이곳 청기와 다방도 지금은 비록 그 가치를 제대로 조명받고 있지 않지만 시민이 기억하는 장소로 50년쯤 후에는 보물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38~40평 남짓한 이곳에는 젊은 층(?)인 50~60대와 70~80대가 주요 손님층으로 그들이 자주 찾는다고 합니다. 출향인들은 아직도 다방으로 전화를 해 ‘청기와 다방 아직도 하나?’며 안부를 묻곤 한답니다. 이 다방은 일제 강점기 최우준씨가 ‘아이스께끼’ 가게를 운영하다가 교복점으로 이어졌고 다시 지금의 다방으로 변모되었다고 합니다. 세월만큼 에피소드도 풍성하다지요. 당시 다방이 귀하던 시절 ‘귀로’, ‘파초’, ‘청기와’는 대표적인 경주의 다방이었습니다. 예술인과 문인, 지식인들이 자주 들락거렸고 당시 경주중학교 교장이던 청마 유치환 선생도 문인들과 함께 자주 다녔다고 전해집니다. 또, 1960년대 김지미, 도금봉, 남궁원 등 기라성 같은 영화배우들이 ‘황진이’, ‘춘향전’ 등의 영화 촬영차 경주에 와서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없는 안동여관, 국제여관, 문화여관 등에 투숙하곤 이 다방에서 담소를 나누고 커피를 마셨다고 하니 경주 대표 다방으로 손색이 없죠? 한때 번성했으나 커피문화가 변화되면서 지금은 우후죽순격으로 늘어난 전문점이나 대형프랜차이즈 점에 밀려나긴 했으나 세대교체라는 급물살앞에서도 경주의 속살문화를 이야기할 수 있는 울타리 낮은 다방입니다. 경주시민은 물론, 각지의 출향인들도 ‘청기와’하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청기와 다방은 우리들 고향의 사랑방, 만남의 추억이 서린 공간입니다. 바로 이 대목이 이 다방의 명맥이 유지돼야 하는 가장 큰 근간이겠지요. 오랜 스토리와 유서깊은 공간성을 지닌 이 다방을 경주의 근·현대 문화자산으로 남겨야 하겠습니다. 그림=김호연 화백글=선애경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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