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運命)은 바꿀 수 있는 것인가? 전문 역술가도 아니고 그쪽 관계자도 아니기에 뭐라 단정적으로 말할 위치는 아니다. 며칠 전에 본 다큐멘터리 《몸을 죽이는 자본의 밥상(What the Health, 2017)》에서는 운명은 바꿀 수 있는 것이라 말한다. 다큐멘터리에서는 본인이 원할 경우 유전자는 조절할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유전자를 조절한다는 것은 운명을 조절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패스트푸드에 관한 다큐멘터리에서 어떻게 이런 주장을 하냐고? 인간의 먹거리를 다루는 그 다큐멘터리는 우리가 먹는 음식으로 분명 우리의 운명을 조절할 수 있다고 한다. 모든 병이 그렇겠지만 가족력 중 심장병이 있다면 아무래도 조심해야 한다. 환자의 직계 가족들은 두려워한다. ‘심장병은 유전(遺傳)이야. 내 부모님이 걸렸으니 나도 걸릴 수 있지’ 하고 생각한다. ‘단순히’ 발현 가능성보다는 ‘당연히’ 그럴 거라는 전제에서 말이다. 그런데 다큐멘터리는 가족력보다 더 위험한 것이 잘못된 식(食)습관이라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식습관도 부모에게서 물려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성장 환경에서 특정한 생활 습관에 어릴 때부터 노출되면서 그런 습관을 성인이 될 때까지 이어간다. 또한 이들이 자녀를 낳아 그 습관을 물려준다. 예를 들어 고기보다 야채를 좋아하는 부모의 자식은 아무래도 야채로 된 음식에 더 많이 노출되는 식이다. 음식이 그러니 질병도 동일한 궤적으로 움직인다. 조부모가 부모에게, 식습관이 이어가듯 그 유관한 질병도 부모로부터 자식에게 전달될 확률이 매우 높다. 가히 가족력(家族歷)이면서 개인과 더불어 가족 전체의 운명(運命)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운명을 피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질병의 유전적 소인(素因)이 있다는 걸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충분조건인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 운명의 열쇠(key)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후성유전학(後成遺傳學)적 변수로서 가령 환경, 식습관, 생활 습관 등 후천적 요인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유전자의 발현을 실제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종양을 억제하는 유전자가 생길 수도 있고, 종양을 형성하는 유전자가 생기기도 한다. 우리의 후천적인 노력인 식습관에 따라서 말이다. 그걸 바꾼다고 표현해도 좋고 선택한다고 해도 좋다. 불변의 운명(運命)이 아니라 가변(可變)의 그것이다. 나쁜 유전자 조합을 가지고 있어도 좋은 음식을 꾸준히 먹으면 개선의 여지는 언제든지 있는 것이다. 시간이라는 개념으로 살펴봐도 그렇다. 고개를 뒤로 하면 여태 살아왔던 과거가 있고, 고개를 되돌리면 앞으로 살아갈 미래가 놓여 있다. 과거와 미래는 분명하다. 반면에 현재는 잘 안 보인다. 현재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궤적을 시작하는 시발점일 수 있지만, 과거의 리듬을 그저 따르기도 쉽다. 사람은 익숙한 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흔히 어떤 학과로 지원해야 하나 고민하는 예비 대학생 아들에게 아빠는 법대가 좋다하고 엄마는 의대가 유망하다고 조언한다. 자식이 뭘 생각하는지 어떤 학과를 가고 싶은지 확인이 의미 없을 정도로 당신들의 전 삶을 통해 체득된 확신의 정보이기 때문이다. 별 뾰족한 수가 없는 자식도 그 조언을 따를 공산이 크다. 자식의 삶은 분명 부모의 그것과는 다른데도 말이다. 그렇게 부모의 과거는 자식의 현재, 나아가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 운명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볼 때 언제든지 바꿀 수 있고 또 바꾸어진다. 운명은 과거나 미래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선택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운명은 불변(不變)이라는 선입견은 과거라는 측면에서의 의미가 강해서이다. 과거가 시간의 전부가 아니듯 운명에는 현재와 미래라는 변수도 고려해야 한다. 지금 당장 선택할 수 있는 현재와 그렇게 이어진 미래 말이다. 그 다큐멘터리에서는 늘 먹어오던 음식, 예를 들어 베이컨이나 햄 등 가공식품과 붉은 육류 섭취를 줄였더니 심장병 발병률이 현저히 줄더라는 것이다. 가족력이라는 천형(天刑)도 몸에 좋은 야채 중심으로 식단을 바꾸는 수준에서도 유의미한 반응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운명이나 팔자는 현재에 대한 현명한 ‘선택’과 거기에 따른 ‘노력’으로 충분히 바뀔 수 있음을 음식으로 웅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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