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의상 스님이 출가한 곳이자 경문왕이 죽은 후 화장한 곳이 황복사(皇福寺)이다. 황복사 터는 경주 구황동 낭산의 동쪽이라 전하며, 삼층석탑(국보 37호)이 남아 있다. 올해 초의 현장 발굴설명회에서 크게 관심을 받지는 못했으나 의미 있는 출토품이 하나 있었다. 깨어진 암기와의 뒷면에 “#” 문양이 연속적으로 찍힌 유물이었다. 이미 1946년 노서동의 호우총(壺衧塚)을 발굴했을 때 출토된 고구려 ‘광개토대왕’명 청동제 그릇(壺衧, 보물 1878호, 415년 제작) 바닥 뒷면에 도드라지게 새겨진 글자의 맨 윗부분에 “#” 문양이 상징 기호처럼 표기되어 있어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경주에서는 이밖에도 또 다른 곳에서 암기와 명문으로 발굴되기도 하였으며, 동천동 중리마을 입구 석탈해왕릉 뒤쪽의 바위에는 음각으로 2개가 조각된 것을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암호인지 부호인지 헷갈리기만 한 “#” 자가 가지는 역사성과 상징성에 대한 논문은 제대로 나오지 못했다. 여러 방송에서 흥미를 가지고 다큐멘터리를 만들었고 소설이 나오기도 하였다. 대체로 고구려 고유의 문양이라거나 광개토왕의 문장, 한민족 고유의 상징, 황제소작(黃帝所作), 우물, 성씨, 북두칠성, 백두산 천지, 생명력과 번식력, 사악함을 쫓는 것(辟邪) 정도로 다양하게 의견을 쏟아 내고 있지만 정답은 없다. 고구려만의 상징이라 하기에도 어려운 것이 김해 예안리 출토 토기, 서울 송파 풍납토성 출토 토기·기와, 충주 누암리 출토 제기(祭器), 서울 광진 구의동 아차산 4보루 출토 유물에서도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범위를 넓혀 보면 중국 네이멍구 자치구 츠펑과 랴오닝 성 조양 일대의 홍산문화(紅山文化, 기원전 4500-3000년)의 유물인 옥으로 만든 태양신의 머리에 새겨져 있고 지린 성 환인지방에서 출토된 토기병에도 나타나며, 또 일본의 묵서(墨書) 토기에도 보인다. 멀리 이라크의 남부 지역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수메르 문명, 6000-330년)에서도 비슷한 문양이 보이고 우크라이나의 6000년전 토기에도 그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 기호를 역사·고고학계에서는 ‘우물정’ 명문이라 표현하고 있으며, 음악계에서는 ‘올림표’ 또는 ‘샤프, 샵(sharp)’으로 발음하고 기보에 사용해 왔다. 1980년대 접어들면서 전자식 전화기가 보급되자 “#” 버튼이 새롭게 생겨 친숙해 졌는데 ‘샵’이라거나 ‘우물정’으로 불렀고 여러가지 부가기능과 프로그램에 이용하기 위한 여분의 기능키 역할을 하였다. 미국에서는 ‘파운드 기호’ 또는 ‘파운드 키’라고도 많이 불리는 이 특수문자(기호)는 컴퓨터 자판에서 기능키로서의 역할을 확실히 하고 있다. 최근에는 해시(hash)기호로 불리며, 주석문으로 코드에 설명문을 붙일 때 사용했다. “#” 뒤에 숫자가 붙으면 ‘몇 번째’라는 뜻을 가지게 되고, 미디어위키에서는 글자 앞에 “#”를 붙이면 숫자목록이 된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Social Network Service)에서는 ‘해시태그’라는 태그(Tag) 용도로 사용되어 특정 핵심어를 빠르고 편리하게 검색할 수 있도록 하는 메타데이터(Metadata) 역할을 한다. 특수 기능키의 하나인 “#”가 요즈음 대세의 정점에 서 있다. ‘해시태그’라는 아이돌 가수 걸그룹이 등장했고 침묵을 깨고 용기를 내어 자신의 경험을 고발하는 “#Me Too”(미투운동)으로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미투운동은 ‘나도 겪었다’라는 뜻이지만 성폭력 피해 경험을 공유하며 생존자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며 우리도 함께 연대할 것’이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의미가 함축적으로 담겨있다. #Me Too 운동은 2006년 미국의 사회운동가 타라나 버크(Tarana Burke)가 제안하여 성범죄에 취약한 유색 인종, 여성, 청소년을 위한 단체인 ‘저스트 비(Just Be)’를 설립하고 SNS에서 ‘Me Too’라는 문구를 쓰도록 제안하는 캠페인을 진행한데서 유래한다. 미투운동의 직접적인 사회 확산의 계기가 된 사건은 2017년 10월초 헐리우드의 유명 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타인(Harvey Weinstein)의 권력형 성폭력 스캔들이 보도되면서였다. 곧이어 배우 알리사 밀라노(Alyssa Milano)가 트위터를 통해 ‘미투 해시태그(#MeToo)’를 붙여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자고 제안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SNS에 자신이 겪은 성폭력을 고발하고 ‘미투 해시태그(#Me Too)’를 붙여 연대 의지를 밝히고 있으며, 전 세계 100개 이상의 국가에서 동참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한국에서는 미국의 미투운동보다 1년 빨리 시작되어 SNS를 중심으로 “#○○_내_성폭력” 형태로 해시태그를 붙이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 어떤 이슈보다 파괴력을 가진 힘으로까지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 기호이다. 역설적으로 “#” 라는 기호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법한 일들을 우리는 해 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는 음지에서 양지로, 침묵에서 고발로, 변명에서 참회로, 면피에서 사죄로 가는 고마운 길라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미투운동을 펼쳐 나감에 있어서 선의의 피해자가 나올 수도 있는 만큼 철저히 사실에 근거한 고발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 미투운동이 지금은 성폭력에 집중되어 있지만 앞으로는 점차 중앙이나 지방자치정부, 공공기관, 회사 등의 비리나 권력형 갑질에 대한 해시태그(#)가 봇물을 이룰 것이다. 새로운 미투운동의 전개랄까. 그리하여 우리는 멀지않은 앞날에 ‘해시태그 행동시대’를 맞이할 것이다. SNS 등을 통해 경험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이를 여러 사람에게 인식시켜 확산한 다음 결국은 직접 행동으로 가는 일련의 시대적 변화를 맞닥뜨릴 것이다. 이렇게 보면 만능을 불러 올 것만 같은 기호 “#”, 우리는 이 ‘올림표’를 통하여 과거를 반성하고 더욱 더 성숙하는, 국민 수준을 “올림”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혹시 우리의 선조들은 선지적으로 “#”를 유물에 표기하지는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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