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에 개항해 전형적인 어촌의 풍광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감포는 어느 도시도 가지지 못한 매력을 지녔습니다. 해안과 내륙을 동시에 안고 있어 지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여러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음이 바로 그것입니다. 감포깍지길 여덟 구간 중 감포항과 마을길로 이어지는 ‘고샅(골목)으로 접어드는 길’인 해국길(4구간)은 감포 포구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해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과거의 향수를 남기는 곳입니다. 김호연 화백님과 지난달 찾은 감포 해국길은 동장군이 기세등등한 날이었습니다만, 김 화백님의 그림속 해국은 연한 보라색으로 표현이 되었군요. 보라색은 빨간색의 열정과 파란색의 차분함을 합쳐 놓은 색으로, 예전부터 고귀한 색이라 불리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설레임으로 흔히 표상되는 해국의 보랏빛이 봄을 기대하게 하는군요. 이번 그림에서, 언뜻 봄의 기운이 함께 느껴지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다소 가파른 계단을 따라 언덕배기에 올라서면 이윽고, 감포제일교회의 해묵은 종탑이 나타납니다. 해국 그림이 오래된 콘크리트 계단에 칠해져 꽃처럼 피어있는 교회로 오르는 계단 왼쪽으로는 감포 해국이 제법 무리지어 심겨져 있었습니다. ‘해국길에 해국이 없어서야’하는 의견들이 모여져, 2012년부터 거마장 등 감포 바닷가에 자생하던 해국을 포기를 나눠 옮겨 이곳에 심었다고 하는군요. 이 일은 감포깍지길 운영위원회와 감포읍사무소에서 지원해 진행했다고 합니다. 한편, 이 구간의 여러 가지 벽화들은 빠르게 퇴색돼, 계속 보수를 진행하고 있답니다. 지금은 새로운 벽화를 그리기 위한 밑작업인 페인팅을 해놓은 상태였습니다. 이곳 감포제일교회는 우리 민족이 아픈 시간을 거쳐 온 이야기도 숨어 있습니다. ‘경주시 감포읍 적산가옥’에 의하면 ‘고향을 떠나온 일본인들이 향수를 달래기 위해 신사와 사찰을 지었다.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그 앞으로 서울 남산의 조선신궁을 모방한 일본 신사가 들어서 있었으나 이 사실을 알고 있거나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또한 그 뒤로는 일본 불교의 3대 종단 중에서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고야산 진언종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 감포교회 오른쪽 옆으로 길게 서있는 단층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검도 도장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과연 누구를 향한 칼끝이었는지 되물어볼 일이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그저 단순하고 무심하게 적산가옥을 둘러보던 길이더라도 지난 역사를 한번쯤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우수를 지나 경칩을 앞두고 있습니다. 살다보면 복잡한 일이 생겨나기 마련입니다만, 봄바다 내음 실려오는 감포를 찾아 번잡한 생각을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어떨까요? 그림=김호연 화백 글=선애경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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