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새 달력에다 주요 일정을 적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2월입니다. 이번 방학에는 책상 위 저렇게 쌓아 놓은 책을 다 읽고, 젬베(djembe: 아프리카 타악기)도 배우고, 밀린 글도 좀 써야겠다고 다짐했건만, 여태 책 두어 권 읽고 하루 종일 온열기 옆에서 뒹굴고 있습니다. 두 달 정도면 계획한 일을 완수하기에 충분할 것 같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네요. 방학이라는 견고한 희망 덩어리를 분과 초로 마구 갉아먹었으니 말입니다. 상황이 이러니 방학 일기가 2주일 넘게 밀린 아들 녀석한테 뭐라 할 수도 없겠네요.
분과 초처럼 작지만 중요한 게 또 있습니다. 불교의 상징인 연꽃 잘 아시죠? 사실 연(蓮)이 불교와 인연이 많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부처님이 앉아 계신 곳이 일단 연꽃[蓮花臺]이지요. 연화대는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 같은 성인(聖人)들만 앉을 수 있거든요.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더러운 진흙 속에 있으면서도 깨끗하고 고귀한 성품을 온전히 드러낸다는 점에서 부처는 그 자체로 연꽃으로 상징되기도 합니다.
불보살을 모시는 자리를 연꽃의 모양으로 조각하여 연화좌, 연화대좌라고 합니다. 연화대에 모시는 것은 연꽃이 진흙 속에서 나서 꽃을 피우지만 조금도 더러움이 물들지 않은 덕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불보살은 깨끗하지 못한 더러운 국토에 있으면서도 세상의 풍진에 휘말리지 않은 채 청정하며 위신력(威神力)이 자재한 것을 나타내기 위해 연화 자리를 만드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럼 연꽃의 씨로 넘어가 볼까요? 식물의 씨는 보통 단단한 껍데기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대개 싹이 흙을 뚫고 올라가 햇빛을 받아서 양분을 만들기 전까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양분이 그 속에 저장되어 있지요. 따라서 씨는 안 좋은 환경에서 비교적 오래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동안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고 있으니, 살아간다는 말이 좀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말입니다.
씨가 얼마나 오랜 세월을 견딜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씨앗이 보여준 기적 같은 사례는 몇 있습니다. 1995년 중국에서는 1200년 된 연꽃 씨앗을 싹틔우는 데 성공했다고 하네요. 연구진은 노화 방지 효소와 단단한 껍데기, 마른 호수에 묻혀 있던 덕분에 오래 살아남을 수 있지 않았을까 추론합니다.
1951년 일본 동경 근처 늪에서 찾아낸 연꽃 씨도 있는데요, 이걸 심었더니 오늘날 연꽃과 다름없는 꽃을 피웠다고 합니다. 선명한 보랏빛이 도는, 잎이 뾰족한 일본 연으로 유명하답니다. 탄소-14 연대 측정법으로 살펴보니 진흙탕 속에서 무려 2만년을 살아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있습니다. 경남 함안군 성산산성(사적 67호)에서 발견된 연꽃 씨앗인데요, 700여 년 만에 꽃을 피웠다고 합니다. 가야문화재연구소가 연못 퇴적층을 발굴·연구하던 중에 발견한 열 개의 씨앗인데, 연대 측정을 해보니 고려시대의 것이라고 밝혔다고 합니다.
이런 사례를 곰곰이 읽다 보니 씨앗은 그냥 씨가 아니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물이나 햇빛 같은 조건만 갖춘다면 언제든지, 또 얼마든지 싹을 틔울 수 있는 내재율(內在律)이라는 점에서 씨앗은 ‘명사’가 아니라 차라리 ‘동사’입니다. 흙 속에 속절없이 저장되고 숨겨져 있는 게 아니라 비록 느리지만 계속 자라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군요.
우리의 일상생활에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희망을, 내일을 그저 저 너머로 던져버리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드러내는 것이랄까요? 그러니 귀찮지만 내일로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줄넘기도 하고, 책을 몇 장이라도 읽으며, 술도 조금이라도 줄여가는 노력 자체가 바로 희망이며 내일이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