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맛있게 먹는 풀코스법 -이윤설 비린 게 무지하게 먹고팠을 뿐이어요 슬펐거든요. 울면서 마른 나뭇잎 따 먹었죠. 전어튀김처럼 파삭 부서졌죠. 사실 나무를 통째 먹기엔 제 입 턱없이 조그마했지만요 앉은 자리에서 나무 한 그루 깨끗이 아작냈죠. 멀리 뻗은 연한 가지는 똑똑 어금니로 끊어 먹고 잎사귀에 몸 말고 잠든 매미껍질은 이빨 새에 으깨어졌죠. 뿌리째 씹는 순서 앞에서 새알이 터졌나? 머리 위에서 새들이 빙빙 돌면서 짹짹거렸어요 한 입에 넣기에 좀 곤란했지만요 닭다리를 생각하면 돼요. 양손에 쥐고 좌-악 찢는 거죠. 뿌리라는 것들은 닭발 같아서 뼈째 씹어야 해요. 오도독 오도독 물렁뼈처럼씹을수록 맛이 나죠. 전 단지 살아있는 세계로 들어가고팠을 뿐이었어요. 나무 한그루 다 먹을 줄, 미처 몰랐다구요. 당신은 떠났고 울면서 나무를 씹어 삼키었죠. 섬세한 잎맥만 남기고 갉작이는 애벌레처럼 바람을 햇빛을 흙의 습윤을 잘 발라 먹었어요. 나무의 살집은 아주 통통하게 살이 올라 있었죠. 푸른 생선처럼 날것의 비린 나무 냄새. 살아 있는 활어의 저 노호하는 나무비늘들. 두 손에 흠뻑 적신 나무즙으로 저는 여름내 우는 매미의 눈이 되었어요. 슬프면 비린 게 먹고 싶어져요 아이 살처럼 몰캉한 나무 뜯어 먹으러 저 숲으로 가요. -나무마저 아작내게 하는 슬픔 얼마나 슬프고 비통했으면 먹을 것, 그것도 터무니없이(?) 살아있는 나무를 맛있게 뜯어먹으면서까지 그것을 해소하려 했을까. 보고 듣는 ‘원격감각’은 대상에 초점을 두고 있기에 원하지 않아도 이루어진다. 반면 냄새맡고, 만지고, 먹는 ‘근접감각’은 육체를 통해 경험된다(소래섭,『백석의 맛』, 136-138면). 이 시는 이 근접감각인 후각과 촉각, 특히 미각이 역동적으로 꿈틀대며 물결친다. 먹는다는 건 감각이 취할 수 있는 가장 무의식적인 행위이다. 거식증이 그 극단적인 양상 아닌가. 화자는 ‘떠난 당신’ 때문에 슬펐고, ‘우는 매미의 눈’이 될 정도로 비통했고. 심지어 ‘죽은 사람에 가까운 참혹의 상태가 된다. 그러기에 “살아있는 세계로 들어가고” 싶었고, “푸른 생선처럼 날것의 비린 냄새”를 맡고 싶었다. 화자는 무의식적으로 “전어튀김처럼 파삭 부서지는 마른 나뭇잎을”, “잎사귀에 몸 말고 잠든 매미껍질”과 나뭇가지에 얹힌 새알을, “닭발 같은 뿌리”를, “살아 있는 활어의 저 노호하는 나무비늘들”을 “닭다리처럼 양손에 쥐고 좌-악 찢”어서 “아작낸다.” 상상력의 힘이다. 화자는 슬픔과 비통, 참혹이라는 마음의 무늬를 전환시킬 에너지로 나무를 선택한 것이다. 이 시는 화자의 이런 감정의 절박함을 대화라기보다는 툭툭 내던지듯 발설하는 고백 양식의 어조와 화법으로 효과적으로 담아낸다. 그렇다고 화자의 감정이 단박에 해소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이런 과정을 통해 자아의 상처는 점차 치유되고 안정으로 나아갈 것이다. ----------------------------------------------------------------------- 손진은 시인 약력 경북 안강 출생. 1987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95 매일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시집 『두 힘이 숲을 설레게 한다』, 『눈먼 새를 다른 세상으로 풀어놓다』, 『고요 이야기』, 저서 『서정주 시의 시간과 미학』외 7권, 1996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경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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