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산수山水는 웅혼雄渾하고, 화조花鳥는 정치情致하다. 비록 전통 수묵과 담채를 구사하되 현대화단의 모더니즘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 가나문화재단 김형국 이사장 글 발췌
아름다운 남산자락을 눈에 담으며 묵향과 함께 온 소산 박대성(小山 朴大成, 1945~) 화백의 가슴을 울리는 작품전 ‘수묵에서 모더니즘을 찾았다’가 3월 4일까지 서울 인사동 가나아트센터 전관에서 펼쳐진다.
가나화랑은 1984년 발족하면서 국내 최초로 전속 작가제를 도입했고, 유망 작가들이 작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그 첫 전속작가의 인연이 바로 박 화백이다.
오랜 서울 생활을 접고 경주에 자리 잡은 지 20여 년.
오랜만에 갖는 서울전시이자 역대 규모의 개인전을 앞둔 박 화백에게도 이번 전시가 주는 감회는 남다를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일, 전시 막바지 준비에 한창인 박 화백을 묵향 내음 짙게 풍겨오는 그의 작업장에서 만났다.
“한쪽 눈을 안 그려도 어색하지 않지? 여기에서 고요한 정적이 묻어나는 거야. 절제로 얻어지는 고요. 그림을 그릴 때 기능도 물론 중요하지만, 거기에는 의식이 꼭 있어야 해. 깨어있는 그림을 그려야 해”
낙관을 찍고 마무리를 짓는 ‘심상心象’작품을 앞에 두고 박 화백의 말이다.
화가는 이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박 화백은 “화가가 제일 먼저 깨달아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사색과 사유가 필요하지. 그렇게 나온 작품이야말로 여러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라며 자신만의 작품 철학을 풀어낸다.
시간 나는 데로 남산자락을 오른다는 박 화백은 “요즘은 한국화와 서양화의 경계가 모호해. 그럴수록 경계를 더 명확히 가져야 한다고 봐. 한국화의 선과 여백, 먹 그것은 바뀌면 안 돼. 그건 변하지 않는 진리와 같아. 다른 재료 역시 지극히 조심하고 자제해야지. 우리 문화는 절제의 문화야”라고 말했다. 이어 “명작은 최소한의 획으로 이미지를 구현하는 거야. 그런 그림을 그리려면 자연의 섭리를 알아야 해. 모든 철학의 원상은 자연에서 나오지. 자연에 귀의해서 땀을 흘릴 줄 알아야 자연도 그 사람을 위해 엄청난 기운을 불어 넣어줘. 그냥 그림만 그리면 기술자 밖에 안 돼. 작품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사색과 사유를 해야 해. 그러한 시간을 통해 영감을 얻게 되는 거지”라고 자연의 순리를 지켜가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중국의 거장 치바이스(齊白石,1860~1957)는 그림은 “닮음과 닮지 않음의 사이”에 있는 것을 귀히 여긴다고 말했는데 박 화백의 화업 역시 그러하다.
가나문화재단 김형국 이사장은 “닮으면서도 동시에 닮지 않으려는 몸짓이 느껴지는 소산의 그림은 단연 산수화다. 언뜻 동양화기법 가운데 특히 조감법鳥瞰法의 과감한 도입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어안魚眼으로 구도의 중심을 잡은 내·외금강 한쪽에 해금강이 자리 잡은 것은 모더니즘의 한축인 초현실주의의 구현이다”며, “멀리서 그의 작품을 바라보면 그 크기가 압도적이고, 가까이 다가가면 세세하고 정밀한 작가의 내공에 기가 죽는다”고 전했다.
6세 때 처음 붓을 잡았다는 박 화백은 “어릴 때 워낙 두메산골에 살아서 서양화, 동양화 개념도 없었어. 그 당시에는 집집마다 동양화 병풍과 족자가 흔했지. 그것을 보며 자랐고, 제사를 모시기 위해 지방을 쓰고 난 지필묵紙筆墨으로 혼자 호작질(손장난) 하고 있으면 집안 어른들이 그림에 소질이 있다며 장려하는 분위기였어. 어른들의 그 말에 지금까지 온 거야. 그때 만약 하지 말라며 손이라도 때렸으면 난 평생 그림을 못 그렸을 거야”라며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어린아이들에게 칭찬과 격려가 정말 중요함을 강조했다.
이번 전시작품 중 특별히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냐는 질문에 “이번 전시는 볼륨이 큰 작품부터 4, 5호까지 작품 수가 너무 많아 일일이 헤아릴 수도 없고, 작품 속에 저마다의 스토리와 추억이 담겨있기 때문에 나한테는 하나하나가 다 소중한 작품이지. 특별히 애착 가는 작품 대신 전시 작품 중 제일 큰 작품을 꼽으라면 효설曉雪이란 작품이 있어. 이상세계와 현실세계의 조화로운 공존을 표현한 작품이지”라며 현명한 답을 내놓는 박 화백.
서울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이번 ‘수묵에서 모더니즘을 찾았다’展은 박 화백의 작품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전시이며, 국내·외 많은 사람이 주목하는 전시다.
자연을 벗 삼아 끊임없이 사색하며 화폭에 옮기기까지 그간 화백의 노력과 시간. 벅찬 감동과 잔잔한 울림으로 다가올 그의 작품을 기대해본다.
한편, 경주 솔거미술관 박대성전시관에서도 오는 3월 25일까지 ‘남산자락의 소산수묵’전이 진행 중이다. 박 화백의 1980년대 작품부터 최근작까지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어 그의 작품을 보기 위해서 솔거미술관을 찾는 관람객 수가 해를 거듭할수록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그중 지역민의 비율은 10% 정도에 불과하지만, 상승세라는 점이 위안거리가 된다.
자연과 소통하고, 사색하며 걸을 수 있는 솔거미술관 역시 박 화백의 이상향과 너무나 닮아있음을 그를 만나고서야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