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八佾 18 子曰 事君盡禮 人以爲諂也 자왈 사군진례를 인이위첨야라 하다. <해석>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임금을 섬김에 예의를 다하는 것을 사람들은 아첨이라 하는구나! <묵상> 임금을 섬김에 예를 다하는 것과 아첨은 전혀 다른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를 아첨과 혼동하는 것이다. 오늘날 사회생활에서도 이런 현상은 종종 있다. 어느 조직에서 상사에게 예의를 다하는 것을 남들은 아첨한다고 욕하는 것이다. 이는 소인배들이 말하는 짓거리이다. 섬김에 예의를 다하는 것은 마땅한 도리이다. 그러나 아첨은 근본부터가 다르다. 아첨은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비굴하게 나아가 비위를 맞추어 주는 것이다. 역시 상사가 또한 소인배라면 진례와 아첨을 구분 못하고 아첨을 진례 정도로 착각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그러면 언젠가 그 아첨꾼으로 인하여 그 상사는 물론 그 조직도 큰 피해를 입고 마는 것이다. 또한 이런 일은 꼭 상사에 대한 진례에서 생기는 것만도 아니다. 어느 조직에서나 어느 구성원 사이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어느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원을 두고 아첨하느라 그렇게 한다는 평가를 받기 일쑤이다. 학교에서도 성실히 가르치고 학생을 진정으로 돌보는 교사를 상사에 아첨하느라 그렇게 한다는 말을 많이 듣는 것이다. 이를 들으면서도 끝가지 성실히 한다는 게 그리 쉽지를 않다. -八佾 19 定公問 君使臣臣事君 如之何 孔子對曰 君使臣以禮 臣事君以忠 정공이 문하되 군사신하고 신사군을 여지하니이까? 공자대왈 군사신이례하며 신사군 이충이니이다. <주석> 定公 : 노나라 군주. 명은 宋, 定은 그 시호이다. 哀公의 아버지이다. <해석> 노나라의 정공이 물었다. 임금이 신하를 부리고 신하가 임금을 섬김에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임금은 신하를 예로써 부리고 신하는 임금을 충으로써 섬기면 됩니다. <묵상> 나는 정공을 보노라면 자신을 보는 듯하여 낯이 뜨거움을 느낀다. 왜냐하면 내가 정공처럼 연약하기 때문이다. 정공은 공자를 무척 존경하였다. 그리하여 공자를 대사구의 자리에까지 앉히고 정치를 맡겼다. 그러나 이웃나라의 간계에 말려들어 다시 공자를 멀리하였다. 이리하여 공자는 유랑의 길로 들어섰다. 공자를 존경은 하되 그의 철학을 시행할 의지는 약하였다. 또한 여색을 단호히 끊을 결단력도 모자랐다. 결국 공자를 놓치고 그도 그 나라도 쇠퇴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의지의 빈약. 곧 나의 단점인 것이다. 그런데 이 구절에 대하여 재미있는 다른 해석이 있다. 곧 임금이 신하를 예로써 부리면 신하는 충으로써 섬긴다는 것이다. 앞의 절을 조건으로 보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상대적인 게 아니고 모든 책임이 임금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이 해석도 상당한 논리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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