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에 대하여 -정호승 밤하늘은 자신의 가슴을 별들로 가득 채우지 않는다 별들도 밤하늘에 빛난다고 해서 밤하늘을 다 빛나게 하지 않는다 나무가 봄이 되었다고 나뭇잎을 다 피워올리는 게 아니듯 새들도 날개를 다 펼쳐 모든 하늘을 다 날아다니는 게 아니다 산에서 급히 내려온 계곡의 물도 계곡을 다 채우면서 강물이 되지 않고 강물도 강을 다 채우지 않고 바다로 간다 누가 인생의 시간을 가득 다 채우고 유유히 웃으면서 떠나갔는가 어둠이 깊어가도 등불은 밤을 다 밝히지 않고 봄이 와도 꽃은 다 피어나지 않는다 별이 다 빛나지 않음으로써 밤하늘이 아름답듯이 나도 내 사랑이 결핍됨으로써 아름답다 -적당히 비우고 부족하게 사는 삶에 대한 찬미 결핍은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지거나 모자람이라는 사전적인 정의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시에서 결핍이라는 말은 완벽히 충족되는 사랑이 불가능하고, 그러하기에 아름답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시인의 사고는 넓고도 섬세하다. 시인은 먼저 대자연의 이치 속에서 결핍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대자연은 좀 부족한 듯 다 채우지 않고, 날마다 계절마다 그 운행을 계속한다. 그들이 할 수 없어서 그렇게 할 것인가. 할 수 있는데도 어수룩하게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다. 알고 보면 그게 자연의 예지다. 밤하늘이 자신의 가슴을 별들로 가득채우지 않듯, 별들도 밤하늘을 다 빛나게 하지 않는다. 나무는 봄이 되어도 나뭇잎을 다 피워올리지 않는다. 새들도 제 날개를 다 펼쳐 모든 하늘을 다 날아다니지 않는다. 계곡의 물도 계곡을 다 채우지 않고, 강물도 강을 다 채우지 않고 바다로 간다. 그것은 등불이 밤을 다 밝히지 않는 이치와 봄이 와도 꽃이 다 피어나지 않는 이치, 그리고 별이 다 빛나지 않음으로써 밤하늘을 아름답게 해주는 주물주의 섭리와 다르지 않다. 그렇다. 별들이 밤하늘을 다 채워버리면 보일 듯 보이지 않는 밤하늘의 신비는 어떻게 드러나겠는가. 피워올리지 않는 나뭇잎의 신비도 마찬가지다. 한쪽의 욕망으로 다른 쪽이 다 드러나면, 그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대자연의 섭리와 맞지 않는다. 시인은 자연의 이치를 에둘러 인간에게 말하는 방법을 취한다. 이 시의 핵심구절은 7행이다. 이를 전후로 동일어법이 변주된다. 시인은 7행에서 인간에게 넌지시 말한다. “누가 인생의 시간을 가득 채우고 유유히 웃으면서 떠나갔는가”라고. 알고 보면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다. 풍요가 아니라 적당한 결핍이 우리 생을 아름답게 한다는 것을 일깨운다. 뭔가 좀 모자라기에 아름다운 인생. 그렇다. 우리 삶은 너무 채우려 바둥거리지 말자. 아직 새해를 시작한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았다. 적당히 비우고, 약간은 모자라는 대로 남들과 조화를 이루며 이 한 해를 살아갈 일이다. -------------------------------------------------------------------- 손진은 시인 약력 경북 안강 출생. 1987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95 매일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시집 『두 힘이 숲을 설레게 한다』, 『눈먼 새를 다른 세상으로 풀어놓다』, 『고요 이야기』, 저서 『서정주 시의 시간과 미학』외 7권, 1996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경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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