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봉(34) 씨는 중국 단동 출신으로 한국에 오기 전 중국에서 농산물 수출·수입과 관련된 통역사로 지내다 2012년 12월 한국행을 택하게 됐다.
“한족, 고려인들이 많은 지역은 대부분이 한국어를 구사할 줄 알기 때문에 경쟁력도 치열하고 중국자체가 임금이 좋지 않고, 친구들이나 지인들도 대부분 중국을 떠나서 새로운 곳에서 정착해 지내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지인의 권유로 한국으로 오게 됐어요”
조금 더 나은 생활을 위한 꿈을 가지고 한국으로 왔지만 시작부터 잘 될 리 없었다. 무엇보다 처음으로 생활을 시작한 곳은 인천이었고, 직장부터 시작해 거처를 잡기까지 많이 힘들었다고.
“당시에 제가 가지고 있던 돈이 한국 돈으로 치자면 3-4000원 정도였어요. 방을 구하기는커녕 제대로 된 식사를 사먹기도 어려웠었죠. 인천에 도착해 숙식을 제공해주는 식당을 찾았고 거기서부터 한국 생활이 시작됐죠. 아마 대부분이 저처럼 시작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식당에서 일하며 조금씩 저축도 하게 됐고, 처음으로 방을 구한 곳은 서울의 반 지하의 단칸방. 비가 내리면 습하고 냄새도 났지만 나쁘지 않았다고.
“서울로 이사를 하면서 엠블럼을 찍어내는 프레스기계를 다루는 일을 시작했어요. 참 열심히 일했어요.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죠. 한국으로 일하러 오는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F4 비자를 받길 원해요. 한국에서 문제없이 열심히 잘 지내기만 하면 F4 비자를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였어요”,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일정기간 이상 지내야만 비자가 나온다는 것을 알았고, 저는 새로운 일자리와 거처를 다시 구해야 했죠. 보통일이 아니었죠. 그때가 2014년 즈음이었는데 이리저리 알아보다가 경주의 한 공장에 취직을 하게 되면서 오게 됐습니다”
중국에서 인천, 인천에서 서울로, 또다시 경주로. 이렇게 계속해서 옮기게 될지 스스로도 몰랐지만 지역에서 생활하면서 그토록 받고 싶었던 F4의 비자를 얻게 됐다.
“생각했던 것보다 이곳에서의 생활이 만족스럽습니다. 서울과는 달리 돈이 모이는 것이 달라요. 서울은 물가도 비싸고, 방값도 비싸다보니 돈을 모으기가 쉽지가 않았는데 경주는 서울에 비하면 꽤 괜찮은 방인데도 방값도 싸고, 지내기도 좋아요. 그리고 사계절이 참 아름다운 곳이라 한국이라는 나라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곳에서 지내면서 원했던 비자를 얻었고, 3개월 전에서야 겨우 고향에 있던 아내를 초청해 함께 지내고 있어요. 주변에서 많이 도와줬기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생각해요. 도움을 주신 분들께 항상 감사합니다”
명봉 씨는 현재 직장을 관두고 작은 중국식 만두가게를 차려 아내와 함께 운영하고 있다. 한국생활이 익숙하지 않은 아내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내린 결론이 장사를 하는 것이었다.
“예전부터 음식을 만들고 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직장생활도 좋지만 그래도 아내와 함께 할 수 있어 좋고, 제가 하고 싶었던 것을 이곳에서 할 수 있게 돼서 더 좋습니다”
처음 한국생활을 시작했을 때에 비하면 많은 것이 안정됐고, 이제 명봉 씨의 다음 목표는 아이를 데려오는 것이다.
“부모님께 아이를 맡겨놓고 왔지만, 언제까지 그럴 순 없죠. 자리를 조금만 더 잡으면 아이를 데려와 함께 지내는 것이 다음 목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까지보다 더 열심히 부지런하게 살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