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출신의 김희진(46) 씨는 1995년 한국으로 시집왔다. 결혼생활을 시작한 곳은 경주 산내 지역. 한국사람 보다 더 구수하게 구사하는 사투리와 호탕한 웃음이 매력적인 희진 씨는 4남매의 엄마로, 한 남자의 아내로 지역에서 20여 년을 넘게 지내오고 있다.
희진 씨는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신기했던 것을 ‘제사’문화라고 했다. 집 마다 틀리지만 최근에는 많이 약소화 되어가는 제사 문화가 아쉽다고 할 만큼 인상적이라고 했다.
“이곳에 와서 제일 신기했던 것은 제사를 지내는 것이었어요. 필리핀에서도 제사는 지내지만 기도를 하는 정도지 한국에서처럼 음식을 차리고 절을 하고 굿을 하는 것은 처음봤습니다” “병풍을 치고 향을 피우고 화려한 옷을 입은 무당이 굿을 하는 것들이 다 신기하기만 했어요”
제사 문화가 신기했지만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제사상을 차리고 한국음식을 배우고 만드는 것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대부분 시어머니께 배운다고 들었어요. 대신에 동네 이웃들이 많이 도와줬습니다. 저에게 ‘착하다 착하다’ 해주시고 명절이나 제삿날에도 많이 도와주고 했던 이웃 어른들에게 감사해요”
지역에서 지내면서 한국생활에는 익숙해졌지만 희진 씨에게도 언어의 문제는 있었다. 특히 희진 씨 주변의 사람들은 대부분 사투리를 사용했기 때문에 한국어를 익히는데 더 어려웠다고 했다.
“엄청 답답했지요. 말이 안통하다 보니 무언가를 배우고 싶어도 제대로 이해를 못했어요. 그래서 혼자서 한국어를 공부했어요. 사전을 가지고 혼자 한국어를 시작했는데 문제는 동네 사람들이 대부분 사투리를 구사하는 것이었어요” “저는 표준어를 공부하는데 들리는 것은 사투리 뿐이니 자연스럽게 저도 사투리를 사용하게 됐어요. 왠만한 한국 사람들보다 사투리를 잘 쓸걸요?(웃음)”
표준어보다 사투리가 자연스러운 희진 씨. 그는 4남매의 엄마다. 저출산 시대인 요즘에는 다자녀 가구에겐 혜택이 많지만 희진 씨는 그런 혜택을 전혀 받지 못했다. 때문에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서 남편과 함께 맞벌이 생활을 오래 해왔다.
“최근에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 혜택도 많고, 자녀가 많은 가정에도 혜택이 많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우리 집 아이들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나이도 아니고 막내아이가 중학생이라서 지원받는 것이 조금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어려워요” “생활은 힘들지만 아이들과 남편이 있기 때문에 참고 이겨낼 수 있는 것 같아요”
희진 씨는 아이들이 모두 성인이 되고 자립을 할 수 있게 되면 마음 편하게 여행도 다니고 좋은 집으로 이사도 가고 싶다고 했다.
“한국에서 지내면서 힘든 점도 많지만 좋은 점이 더 많아요. 처음은 비록 시골에서 시작했지만, 사람들 인심도 좋고, 도움도 많이 받았어요” “아이들이 커서 독립하게 되면 어디든 여행을 다니고 싶어요. 그리고 집도 이사 가고 싶어요. 아파트는 말구요. 층간소음 때문에 신경 쓰일 것 같아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