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해주려 하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는 허름하고 작은 아파트. 경주에도 고층아파트가 숲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구황동 보문 가는 길 입구 한 켠에 작은 섬처럼 표류하는듯한 아파트 한 채가 수줍은 듯 서 있습니다. 경주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 그 이름은 ‘화랑’입니다. 경주가 바로 떠오르는 이름이죠? 1975년 5월 9일 승인된 경주 최고령 아파트인 셈이지요. 올해로 43년 된 이 아파트는 4층짜리 한 동 건물로 현재 24세대가 살고 있다고 합니다. 경주시에서 20년 이상, 20세대 이상 노후된 공동주택은 화랑아파트 외 162곳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답니다. 경비실이 따로 없는 그 아파트를 한 번 들러 보았습니다. 시간을 나이테처럼 두른 그곳에서 ‘낡음’과 ‘오래 됨’이라는 의미를 되새김해 보았습니다. 좁은 콘크리트 계단으로 올라가 본 4층 옥상에는 화분들과 옹기들, 각종 허드레 세간살이가 얼기설기 자라하고 있었습니다. 옥상에서 바라본 탁 트인 사방의 경치는 꽤나 신선해 보였고요. 지척인 화랑초등학교, 분황사를 비롯해 알천 맞은편에는 신생의 다양한 아파트 군들이 내려다 보였습니다. 아파트 1층 한 구석에는 장작을 땔 수 있는 아궁이가 아직도 건재했는데 그 사용처가 무척 궁금했습니다. 2층 복도에서 이야기를 하던 주민 두 분이 ‘낯선 사람’인 저의 출입에 민감해 했습니다. 이 동네에 사는 한 이웃 주민은, 당시에는 경주에서 첫 선을 보인 신기한 주택의 형태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작은 평수의 연탄보일러를 사용하는 아파트였으며 주로 직장인들이 거주하거나 외지에서 온 이들이 거주했다고 합니다. 경주시 건축과는 이 아파트 구역이 문화재보존영향 검토대상구역이라고 했습니다. 이 구역은 높이 12미터의 경사 지붕을 하게 돼 있는 고도 제한이 있는 구역이었습니다. 재건축은 당연히 사업성을 검토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고도 제한이 있다 보니 사업성이 떨어져 재건축을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합니다. 최근 경주, 포항 지진 등의 여파와 여러 위험요소를 안고 있지만 마땅한 대책이 없는 실정인 셈이죠. 경주시는 화랑 아파트가 사유재산이므로 새로운 예산을 편성할 근거가 없다고 전합니다. 당분간 화랑 아파트의 새로운 변신은 아마도 어려울 것 같군요. 대기업의 아파트 브랜드가 삶의 형태를 표현하고 삶의 질을 재단하는 세상에, 경주 시내 한 켠에는 화랑 아파트가 외롭게 서 있습니다. ‘그들’이 살고 있는 것이죠. 이 아파트를 추억의 대상으로 막연히 감상적으로 표현한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습니다. 오래되면 이곳저곳 손볼 곳이 많아지게 마련인 것이 세상 이치지만 이 오래된 아파트가 가지는 풍부한 삶의 의미조차 퇴색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림=김호연 화백 글=선애경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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