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랑딸랑... 기관차의 진입을 미리 알리는 역무원의 종소리와 함께 역구내로 성큼성큼 들어오는 여객기관차의 따뜻한 불빛의 안내를 받으며 비어있는 한 자리에 불쑥 편승하고 싶은 순간은 혹시 없으셨나요? 우리가 지녔던 기차와 역(驛)에 대한 단상 중 한 모습일테죠. 보리가 잘 되었다고 붙여진 지명인 건천읍 모량리에 있는 간이역 모량역(毛良驛, 건천읍 내서로 1424-21). 90년 세월을 모량리 일대 주민의 애환을 벗해주었던 간이역 모량역에는 적당히 녹이 슬어 찌뿌둥해진 옛날 역명판도 그대로였고 적요한 앞마당도 그대로였습니다. 봄이 되면 역 마당의 벚꽃나무가 참 보기 좋다는 모량역. 혹자는 황금벌판 사이의 가을 모량역을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역. 한때는 누군가의 통학길로, 나들이길로, 장보러 가는 길을 지켜봐 주었던 모량역은 현재, 온전히 그 기능을 상실한 빈 둥지입니다. 그렇지만 모량역에는 서민들의 ‘애환’ 이라는 매력적 이야기가 숨어있어 ‘추억’을 달래는 힘을 지녔습니다. 모량역은 1922년 광명간이역으로 개업해, 동대구에서 포항간 통근열차가 2008년 폐지되면서 여객 취급이 중지됐습니다. 지금은 경주 11개 간이역 중 하나이고요. 간이역을 철도공사에서는 사람이 없는 무인역으로 지칭하고 있습니다. 2012년 기자가 연재한 ‘간이역’으로 찾은 지 5년여 만에 모량역을 다시 찾았습니다. 한겨울의 모량역 앞마당에는 나무들만이 여전했는데, 오랜 수령의 벚나무며, 플랫폼 쪽에 있는 제법 큰 은행나무가 역사(驛舍)와 조화를 이뤄 쓸쓸한 간이역의 서정을 진하게 풍기고 있었습니다. 한동안 먹먹하고 ‘뭉클’했다면 사치스럽다고 할까요?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아담한 모량역은 건물의 뼈대는 당시 모습이 잘 남아있는 편입니다. 모량역의 풍광과 역사(驛舍)가 아름다워 몇 년전 박목월 생가와 연계해 문화공간으로 바꾸려 시도해보았으나 용도변경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바로 지척에 신경주역을 두고 있으며 큰 집격인 건천역마저 무인화 될 가능성이 높은 기로에 서 있어선지 모량역은 그래서 지금 더 수척하기만 합니다. 모량역은 코레일 대구본부 소속역으로, 2020년경 동해남부선 복선공사가 완료되면 경주의 다른 역들과 마찬가지로 신경주역과 통합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시한부인 셈이죠. 이런 역사들을 보고 있으면 안타깝지만 딱히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간간이 들르는 사람들의 발자욱 소리를 모량역은 들을까요. 오래된 대합실의 창문을 만져보고 역명판을 기념하고 고적한 대합실 외벽을 문질러 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모량역은 알까요? 머잖아 사라질 모량역에서 ‘어제’를 회억해보며 경주 근대사의 한 페이지를 찾아보는 즐거움을 누려보시기를..., 그림=김호연 화백 글=선애경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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