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인도에는 네 계급이 있었다. 사제 계급인 브라만은 신의 입에서, 왕족인 크샤트리아는 신의 옆구리에서, 평민인 바이샤는 신의 배에서, 노예 계급인 수드라는 신의 발바닥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문화재와 관련된 글을 쓰려면 노예인 수드라 계급을 감수해야 한다. 책장을 뒤지고만 있어서는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없다. 현장을 찾아 이리저리 거닐어 보아야 한다.
오늘따라 바람이 거세게 불어 흙먼지로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다. 아예 눈을 꼭 감고 문두루비법(文豆婁秘法)을 행하던 당시로 돌아가 본다.
문두루비법은 명랑법사(明郞法師)가 중국에서 밀교를 배운 후 635년(선덕여왕 4) 귀국할 때 처음으로 이를 신라로 가져왔다. 이 비법은 『불설관정복마봉인대신주경(佛說灌頂伏魔封印大神呪經)』에 의한 것이다. 이 경에 의하여 불단을 설치하고 다라니 등을 독송하면 국가적인 재난을 물리치고 국가를 수호하며 사회를 편안하게 할 수 있다고 한다.
『삼국유사』 「신주」편 ‘혜통항룡’조에 의하면 명랑이 용궁에 들어가서 신인(神印)을 얻어 와서 사천왕사를 처음 세우고, 여러 번 이웃 나라가 침입해 온 것을 기도로 물리쳤다. 이 신인을 산스크리트어로는 ‘무드라(Mudra, 文豆婁)’라고 한다.
『삼국유사』 「의해」편 ‘의상전교’조에 의하면 신라의 승상 김흠순*(혹은 김인문이라고도 한다)과 김양도 등이 당에 갇혀 있었는데 674년(문무왕 14)에 당 고종이 50만 대군으로 신라를 공격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흠순 등은 몰래 의상에게 권하여 먼저 신라로 돌아가게 하여 이 일을 조정에 알리게 하였다. 이에 문무왕이 명랑법사를 불러 대책을 의논했다. 법사는 신유림에 사천왕사를 짓고 밀교의 문두루비법을 쓰도록 권유하였다.
그런데 당나라의 침입이 워낙 급박하여 절을 지을 시간이 없었다. 임시로 색이 있는 비단으로 절을 짓고 풀을 묶어 오방신상(五方神像)을 만든 후 12명의 유가승(瑜伽僧)으로 하여금 문두루비법을 쓰도록 하였다. 그러자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풍랑이 크게 일어 당나라 군대의 배가 모두 침몰되었다.
이렇게 해서 신라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당나라 대군을 물리치고 삼한일통을 완성했던 것이다.
위기를 넘긴 후 정식으로 사천왕사를 짓기 시작하여 5년 만에 완공하고, 왕실에서 성전(成典)을 두어 관리하였다.
성전이란 일반 사찰과 달리 왕실의 원찰(願刹)로서 봉사(奉祠)기능도 담당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은 성전사원으로는 이곳 사천왕사를 비롯하여 7개의 사찰이 있었다.
문명대 교수는 이 문두루비법의 실행을 ‘밀교식 대호국법회’라고 표현하면서 “명랑법사는 이 법회를 주관했던 법주였으므로 당연히 사천왕사의 창건주가 되었으며, 이와 동시에 그 공로를 인정받아 신인종이라는 종파를 정식으로 공인받았다고 생각된다”라고 했다.
이후 사천왕사와 관련하여 『삼국유사』에는 10세기 초 경명왕 대에 신라가 혼란하자 사천왕사 벽화의 개가 나와 짖거나 탑의 그림자가 거꾸로 선 채 움직이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신라의 국운을 예고한 것이었다.
『고려사』 「세가」에 의하면 고려 문종 28년(1074) 7월에 사천왕사에서 27일 동안 문두루도량을 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조선의 개국공신인 하륜이 경오년(고려 공양왕2년, 1390) 봄 울주(蔚州)로 가면서 이곳 천왕사(天王寺)에서 유숙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에는 김시습의 시 ‘유금오록(遊金鰲錄)’을 통해 15세기 후반 민가로 변해버렸음을 알 수 있다. 이로 미루어 사천왕사는 15세기 초반에 폐사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초에 한 일본인이 거의 도굴하다시피 서탑터를 발굴해서는 사천왕 부조상 등의 유물을 찾아내어 이를 팔아버렸다는 기록이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이 알려졌음에도 조선총독부는 실측 외의 발굴조사에는 무심했다. 이에 더하여 1930년대에 사찰의 강당터 위로 동해남부선 철도를 부설하였다. 현재 이 구간은 경주시를 크게 우회하는 방향으로 선로를 이설하는 공사를 하고 있는데, 2018년 12월 개통 예정이었으나 다소 늦춰질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흠순은 김유신(金庾信)의 아우이며, 그의 아들은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정벌할 때 장렬히 전사한 화랑 반굴(盤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