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송종찬
새해 첫날은 돈 벌러 나갔다가
간신히 집에 기어 들어온
자식놈처럼 빈 손으로 온다
동지 지나 쌓인 눈발 헤치며
열매를 찾아나서는
배고픈 새처럼 새해는 온다
자식을 위해 저녁을 준비하는
어머니의 떨리는 가슴만큼이나
새해의 품은 깊고 시리어
처마끝을 울리는 바람소리에
다시 주먹을 쥐어보며
잠 못 이루고 뒤척이는 밤
새해 첫날은 소리없이 다가와
어머니 마음 속에 돌 하나 얹어놓고
뒷모습만 남긴 채 떠나간다
-새해에 떠올려보는 어머니 마음
해마다 연말이 되면 내년 계획에 설레게 된다. 섣달 그믐 제야의 종소리를 들을 때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전국의 해돋이 명소는 차량과 인파들로 북적인다. 바다에서 올라오는 그 싱싱하고도 붉은 첫 햇덩어리를 보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소원을 빌어본다.
그러나 새해라고 시간이 달리 가겠는가. 해돋이를 보러갔던 사람들은 집에 돌아오기가 무섭게 곯아떨어진다. 다음날은 더 몽롱하게 하루를 보낸다. 지난날과 하나도 다르지 않게 흘러가는 것이다.
이 시는 ‘새로운 해’라는 뜻의 ‘새해’인데도 해마다 달라지는 것이 없이 다가오고 또 가버리는 새해 첫날의 처연한 모습을 뭉클하게 그리고 있다. 이 시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수사는 생태적 사유에 기초한 직유이다. 새해 첫날이 “돈 벌러 나갔다가/간신히 집에 기어 들어온 자식놈의 빈손”, “동지 지나 쌓인 눈발 헤치며/ 열매를 찾아나서는/배고픈 새”라니! 이 속의 스토리만큼이나 춥고 스산한 인생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겠는가?
시인은 계속하여 새해를 가족사 특히 어머니와 자식 간의 마음으로 풀어내며 시의 입체성을 더한다. 새해의 품을 “자식을 위해 저녁을 준비하는/어머니의 떨리는 가슴만큼이나” 깊고 시리다고 묘사한다. 새해의 발걸음과 새해의 품이 하나의 형체를 선명히 얻고 있다. 화자는 4연에서 처음 슬쩍 개입한다. 그 역시 제야의 밤을 주먹을 쥐고 잠 못 이루고 뒤척이고 있다.
5연은 새해 첫날의 뒷모습을 “어머니 마음 속에 돌 하나 얹어놓고” 떠나가는 자식의 뒷모습으로 묘사한다. 하루하루가 어머니의 마음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인식으로 살아야 겠다는 것을 다짐하는 새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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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은 시인 약력
경북 안강 출생. 1987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95 매일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시집 『두 힘이 숲을 설레게 한다』, 『눈먼 새를 다른 세상으로 풀어놓다』, 『고요 이야기』, 저서 『서정주 시의 시간과 미학』외 7권, 1996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경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