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 동리·목월문학상 운영 조례(안)’과 관련해 경주시, 동리목월기념사업회와 경주문협 등 문인단체 간 해묵은 갈등이 수그러들지 않아 향후 논란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경주시가 경주시의회 제229회 제2차 정례회에 상정한 이 조례(안)은 지난 18일 열린 문화행정위원회 안건 심의에서 ‘부결’됐지만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
경주시에 따르면 동리목월문학상의 원활한 사업수행을 위해 문학상 운영의 전반적인 사항에 대해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을 위해 조례를 제정키로 했다.
동리목월문학상은 동리목월기념사업회가 한국수력원자력(주)과의 협약을 통해 수상자 상금 1억4000만원(2명)을 지원받아 지난 2008년부터 10년째 운영하고 있다. 2010년부터는 경북도와 경주시가 심사비와 시상식 등에 필요한 예산 500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경주시는 동리목월문학상에 대한 공정한 심사기준을 마련해 이 상의 위상제고 및 안정적인 예산확보·지원 등 사업 지속성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조례제정 취지를 밝혔다.
동리목월문학상에 대한 경북도와 경주시의 보조금 지원이 일몰제에 적용될 가능성이 있고, 한수원의 상금 후원도 계속 보장이 어렵다는 것. 이에 따라 이 상의 지속적인 유지와 안정적인 체계를 만들기 위한 제도적인 장치 마련을 위해서는 조례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시의원들은 조례 제정 취지와 내용에 대해 상반된 입장을 나타냈다.
경주시가 상정한 조례(안)의 내용에는 동리목월문학상 주최 및 주관을 경주시가 하고, 필요시 (재)경주문화재단이나 경주시장이 선정하는 문화예술단체가 주관하게 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이 같은 조항에 대해 먼저 말문을 연 것은 김영희 의원. 김 의원은 “동리목월문학상을 (재)경주문화재단이나 경주시장이 선정하는 문화예술단체가 주관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단체에 운영권을 주겠다는 의미가 된다”며 “10년간 동리목월기념사업회가 주관하고 있는 사업을 빼앗아 문화재단이나 타 예술단체에 준다는 것이어서 상당한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현주 의원은 경주시가 조례를 제정하려는 배경에 대해 따져 물었다. 정 의원은 “민간이 10년째 운영하고 있는 사업이고, 한수원에서도 당장 수상자 상금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 시가 조례를 제장하려는 배경이 무엇인가”라며 “행정이 민간사업을 건드려서 불필요한 민원을 제기하도록 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호대 의원도 “동리목월문학상은 민간과 공기업이 먼저 주관한 사업으로, 시가 조례를 제정해 주최·주관하는 것은 결국 사업을 가로채기 하는 것처럼 돼버린다”며 “경주시가 말하는 상의 위상과 공정성 관련 구체적인 사실관계도 없는 가운데 문학관련 단체 간 갈등 사이에 시가 입장이 난처하게 끼여 있는 꼴”이라고 질타했다.
이에 대해 경주시 관계자는 “경주시가 조례 제정을 통해 동리목월문학상 운영에 대해 명문화하게 되면 한수원도 후원하는 명분이 강화된다”며 “문학관련 단체 간 갈등이 다소 있어 시가 (조례 제정 등을 통해) 관여해야 할 상황”이라고 강조했지만 시의원들을 설득하지는 못했다. 이날 시의회 문화행정위원회는 의원들 간 의견 조율을 위해 10분간 정회 후 속개했고, 결국 동리목월문학상 운영 조례(안)을 부결시켰다.
-경주시 조례 입법예고에 동리목월기념사업회 ‘발끈’
경주시가 지난 11월 6일 ‘경주시 동리·목월문학상 운영 조례’를 입법예고하자 동리목월기념사업회(이하 사업회)는 단체의 입장을 밝히는 문서를 경주시의회, 각 기관 및 단체 등에 발송하는 등 발끈했다.
사업회가 발송한 입장문에 따르면 “경주시가 동리목월문학상에 대한 운영조례를 만들겠다는 것은 아무런 당위성이 없다”면서 “10년간 운영해오고 있는 사업을 경주시가 어떤 법률에 근거해 조례를 만들겠다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이는 관이 민간의 권리를 빼앗아 가는 직권남용”이라고 주장했다. 조례안의 내용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따졌다.
‘동리목월문학상을 경주시가 주최, 주관하고 필요시 (재)경주문화재단이나 경주시장이 선정하는 문화예술단체가 주관하게 할 수 있다’는 항목에 대해 사업회가 운영하고 주관하고 있는 사업을 경주시에서 빼앗아 다른 단체에 주겠다는 뜻으로 파악된다고 주장했다.
또 공정한 심사기준에 대해 조례상 심사규정이 동리목월문학상 정관에서 밝히고 있는 심사규정에 비해 조악한데도 공정한 심사규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의가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조례상 안정적인 예산지원 역시 “동리목월문학상 정관에 따라 10년 동안 한수원과 경북도, 경주시에서 협찬해 지속적으로 잘 운영되고 있는 상황인데도 시가 안정적 예산을 운운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반박했다.
동리목월기념사업회 한 관계자는 “사업회와 한수원과의 협약을 통해 아무런 문제없이 운영돼 온 사업인데 무슨 목적으로 조례제정을 추진하려는지 의도를 밝혀내야 한다”면서 “사업회가 탄생시킨 동리목월문학상을 아무런 관련도 없는 문화재단과 문화예술단체가 운영권을 가질 수는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동리목월 관련 사업 특허청 업무표장 상표출원 신청
여기에다 동리목월기념사업회는 지난달 30일 특허청에 동리목월문학상을 업무표장 상표출원까지 신청했다. 동리목월문학상 운영사업을 비롯해 △김동리, 박목월 기념관 건립사업 △동리목월 생가 복원사업 △김동리, 박목월의 생애와 업적 발굴에 관한 기록, 자료, 유품 등의 수집, 보존, 전시사업 △이에 관한 학술세미나 개최 및 외국과의 문화교류 추진사업 △김동리, 박목월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고 이를 재조명하여 선양하기 위한 부대사업 등 총 6개 사업이다. 동리목월과 관련한 사업 전반에 걸쳐 특허 출원을 신청한 것.
특허청에 따르면 업무포장 상표출원 신청하게 되면 상표법 제58조에 의거 출연과 동일유사 상품을 사용하는 자에게 출연공고 전이라도 서면으로 경고할 수 있다. 또 경고를 한 출연인은 상표권 설정 등록 후 등록할 때까지 기간에 발생한 해당 상표 사용에 관한 업무상 손실에 상당하는 보상금 지급을 청구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특허청이 특허출원을 인정하지 않는 한 신청 접수 이후부터 이들 사업의 명의를 타 기관 및 단체가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이는 사업회가 동리목월 관련 사업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읽혀지고 있다.
-2개 문인단체 갈등 확산되나?
이처럼 특허출원까지 하게 된 배경에는 사업회와 경주문협 일부 회원들 간 갈등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이들 단체 회원들 사이에서 나오는 말이다.
이들의 주장을 종합해보면 이렇다. 논란의 발단이 된 것은 지난 2015년 말 사업회의 보조금 부당 집행 문제가 불거지면서다. 당시 일부 경주문협 회원은 사업회의 문제를 검찰에 고발했었고, 1심과 2심, 대법원까지 항고했지만 결국 무혐의 처분 받았다. 반면 경주시는 지난해 말까지 사업회의 보조금 집행에 대해 조사를 벌였고, 그 결과 1000여 만원을 환수 조치했다.
이는 지난 7월 동리목월문학관 위탁기관 선정 결과 (사)한국문인협회 경주지부가 새로운 위탁기관으로 선정되는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는 것이다. 동리목월기념사업회는 지난 2006년부터 위탁운영을 맡아왔었다. 이런 과정에서 이들 단체 간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는 것.
사업회가 이번에 경주시의회 등에 보낸 동리목월문학상 운영 조례 관련 입장문에는 그 갈등의 깊이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에 따르면 최근 열린 경주문협 회의에서 동리목월문학관 운영권을 위탁받았지만 실익이 없어, 사업회가 하고 있는 모든 사업을 가져와야 하고 이를 추진하는 대표까지 선정했다고 사업회는 주장했다.
또 그동안 소송 등을 당해왔지만 더 이상 두고 보는 것은 경주문단의 발전을 위해 좋지 않다는 결론을 내린 만큼,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법적조치에 들어가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대해 경주문협 한 관계자는 “사업회의 주장은 전혀 사실무근”이라며 “양 단체 간 제기되고 있는 갈등 역시 일부 회원들의 문제이지 전체 의견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번 동리목월문학상 관련 조례 상정을 빌미로 지역 2개 문인단체의 갈등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이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도 곱지 않다.
경주의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서로 능력과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법적공방까지 가는 갈등이 이어진다면 한국문학사에 큰 업적을 남긴 동리·목월 선생에게 누를 끼치는 꼴이며, 선생을 존경하는 경주시민들의 자존감도 떨어뜨리게 된다”며 “더 이상의 갈등을 서둘러 봉합하고, 단체 본연의 의무인 경주 문학 발전에 더욱 힘써야 할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경주시 관계자는 “문인단체들 간 갈등이 있었지만 이 때문에 조례를 제정하려 한 것이 아니라 한수원의 후원 명분을 강화하기 위한 이유가 더욱 컸다”며 “단체들 간의 갈등 해결을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