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 청렴도, 전국 꼴찌!’ 국민권익위원회가 발표한 2017년 공공기관 청렴도 평가에서의 성적이다. 전국 지방자치단체 243개 시·군 가운데 240위이다. 중앙행정기관과 교육기관, 공직유관단체 등 전체 측정 대상기관 573곳 가운데서도 569위라니 낯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하는 실정이다. 다산 정약용은 전편에서 “청렴은 백성을 이끄는 자의 본질적 임무요, 모든 선행의 원천이요, 모든 덕행의 근본이다.(廉者 牧之本務 萬善之源 諸德之根)”라고 가르치고 있다. 올바른 관리(牧民官)의 생활에 대해 적은 이 책은 베트남의 독립영웅이자 국부(國父)인 호치민[胡志明]이 전쟁터에서도 항상 옆에 끼고 다니며 읽었다 하고, 유언으로까지 머리위에 올려 달라고 했다 한다. 이 말의 진위는 논란이 없지 않으나 1969년 호치민이 타계했을 때 그에게는 단 한 푼의 돈도, 한 평의 땅도 없었다고 한다. 두 칸짜리 집무실과 폐타이어를 기워 만든 샌들이 그가 가지고 있던 전부였다 하니 베트남의 아버지로 불릴 만하다. 청렴은 청렴결백(淸廉潔白)을 이르는 말로서 성품과 행실이 맑고 깨끗하며 아무런 허물이 없는 것을 뜻하는데, 이러한 관리를 청백리(淸白吏)라 일컫는다. 청백리의 청(淸)은 맑은 물처럼 티 없이 깨끗하다는 뜻이요, 백(白)은 다른 빛깔에 전혀 물들지 않은 흰색으로 때 묻지 않았다는 뜻이며, 리(吏)는 관리라는 뜻이다. 곧 청백리란 청귀한 관직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과 품행이 단정하고 순결하며, 자기 일신은 물론 가내까지도 청백하여 오천에 조종되지 않는 정신을 가진 관리, 즉 소극적 의미인 부패하지 않은 관리가 아닌 적극적 의미의 깨끗한 관리를 가리킨다. 조선 명종(1545년∼1567년)대에 살아 있는 자는 염근리(廉謹吏:청렴하고 근면한 관리)라는 명칭을 붙여 선발하고, 특별한 과오가 없는 한 죽은 후에는 청백리로 녹선하기로 결정한 기록을 보아 대개 염근리로 뽑힌 사람이 죽으면 청백리가 되었으므로 두 경우를 가리지 않고 청백리라 통칭한 듯하다. 정부에서도 청렴한 공직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2001년 부패방지위원회(腐敗防止委員會)를 만들고 이를 개편하여 2005년 국가청렴위원회(國家淸廉委員會)로 탈바꿈시킨 후, 2008년 국민고충처리위원회와 통합하여 국민권익위원회(國民權益委員會)라는 중앙행정기관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들 기관에서는 2002년부터 지방자치단체를 포함한 공공기관에 대해 매년 청렴도 평가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 평가에서 경주시는 평가제도 시행 이래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 든 것이다. 일부에서는 지난해 적발된 수억 원의 직원 뇌물수수사건이 점수를 다 까먹었다고 볼멘소리를 하지만 그동안의 성적표를 보면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시냇물을 흐렸다고만은 할 수 없는 실정이다. 2013년에 2등급으로 전국 75개 시 가운데 17위(경북 10개 시 중 1위)를 한 이후 2014년 5등급 73위(경북 10위), 2015년 4등급 52위(경북 7위), 2016년 3등급 43위(경북 3위)였다가 금년에는 아예 꼴찌로 주저앉은 것이다. 군(郡)을 포함한 전국 지방자치단체나 전체 측정대상 기관을 망라하면 더욱 참담한 실정이라 등수 비교가 민망하다. 경주는 신라 천년 왕도의 유서 깊은 역사도시이기에 타도시 사람들은 암묵적으로 깨끗하고 살기 좋은 양반의 고장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공직자들도 청렴하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빛 좋은 개살구와 같은 모습이니 이번 일로 시민이 받은 마음의 상처는 이만 저만이 아니다. 경주시는 직원의 부패를 방지하고 청렴한 공직기강을 세우기 위해 매년 결의대회나 실천대회를 열고 반복 교육을 시행한 것도 모자라 개인별 청렴서약까지 받았지만 평가지수가 단박에 상승되지는 않았다. 급기야 지난해 초에는 ‘부패 ZERO · 청렴 UP’을 위한 반부패·청렴향상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반전을 꾀하였지만 도로 묵이 되고 말았다. 이는 직원들의 부패에 대한 인식 낮거나 청렴의식이 무디어져 있다는 것으로 밖에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쯤 되면 경주시 전체 공무원은 며칠이고 출근시간을 이용하여 주요 도로변에 늘어 선 후 사과한다는 팻말을 들고 고개를 숙여야 마땅하다. 자발적으로 월급여의 몇 %를 떼어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기탁하면서 석고대죄 하여도 시민의 분을 삭이기에는 부족할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부패는 사회에 흔하게 퍼져 있었던 모양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에서 “군자의 학문은 수신(修身)이 반이요, 나머지 반은 목민이다. 성인(聖人)의 시대가 이미 오래 되었고, 말도 없어져서 그 도(道)가 점점 어두워졌다. 요즈음의 사목(司牧)이란 자들은 이익을 추구하는 데만 급급하고 어떻게 목민해야 할 것인가를 모르고 있다. 이 때문에 백성들은 곤궁하고 병들어 줄을 지어 진구렁에 떨어져 죽는데도 사목된 자들은 고운 옷과 맛있는 음식에 자기만 살찌우고 있으니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라고 그 시대를 한탄하고 있다. 경우야 다를지언정 오늘의 경주시 청렴도 성적표는 문득 이런 글귀에서 맴돌이를 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탐관오리로 지목되어 탄핵을 받았거나 처벌받은 관리들은 장리안(臟吏案)에 수록되어 본인의 관직생활이 막히는 것은 물론 그 자손들이 과거를 보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개인의 인권보호 이전에 공직자로서 누를 끼친 이들의 실명 공개는 과한 생각일까. 그래도 너무하다 싶으면 환골탈태(換骨奪胎)하는 전환점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뼈를 바꾸고 태를 빼내는 심정으로 경주시 공무원의 모습이 바뀌었으면 한다. “나라를 다스릴 때는 공평함보다 큰 것이 없고, 재물에 임하여는 청렴보다 큰 것이 없다.(治政莫若平 臨財莫若廉)”는 충자(忠子)의 명언을 새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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