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놋그릇 만드는 집들이 많았던 터라 ‘놋전’이라 불린 동네가 있었습니다. 바로 교촌마을 옆 황남동 한 켠 이었지요. 이 일대가 문화재 구역이라 철거되고 모두 떠난 후였지만, 오롯이 허름한 집 한 채가 오랜 시간동안 경주시민들과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았던 ‘놋전분식’이 있습니다. 착한 가격은 덤이고 부담 없이 국수 한 그릇, 가오리 회 한 접시 먹기에 제격인 곳이죠. 투박한 양은 그릇에 담겨 나오는 국수는 허름해 보이지만 그 맛은 일품입니다. 세월을 비켜간듯한 외관의 그곳에는 말이 분식집이지 잔치국수, 문어, 소라, 가오리 회, 파전, 빈대떡, 돼지수육 등 말만 들어도 군침 도는 메뉴들로 가득합니다. 비 오는 날 맛보는 잔치국수는 일품이지요. 춘흥(春興)에 들떠, 곁들였던 막걸리에 취해 불콰하게 취기가 오르면 옆 자리에서 만난 생면부지의 사람들과도 자연스레 친구가 되곤 했습니다. 그렇게 서로 담담한 위로를 주고 받았습니다. 허름한 옷차림의 노동자서부터 예술, 문화계의 내로라하는 지성들까지 다양한 손님들이 뒤섞이곤 하지요. 자리가 마땅히 나지 않을때면 다른 테이블 한 쪽에 슬쩍 동석하기도 하구요. 그림을 그리신 김호연 화백도 한 때 이웃이었고 이곳의 오랜 단골이라고 합니다. 질펀한 경주말을 구사하는 주인 아주머니는 뚝딱 한 가지씩 기가 막히는 메뉴들을 순식간에 만들고 주인 아저씨는 무심한 듯 익숙하게, 손님들 앞에 음식들을 대령하지요. 물론 구수한 정은 투박하게 흐르고, 밑반찬은 항상 넉넉하게 주십니다. SNS 덕분만은 아니었겠지만 전국에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은 이어졌습니다. 주말이나 관광시즌이면 길게 줄을 서야 할 정도입니다. 소박한 명소라고나 할까요? 이제는 우리들 추억속에서나 간직될 이곳에서의 놋전분식은 새 전기를 맞이합니다. 주인 내외는 40년 동안 정들었던 이곳을 떠나, 이곳에서의 기나긴 복무(?)를 마치고 23일 새로운 둥지에서 개업을 앞두고 있다고 합니다. 어떠한 장소성은 그 장소에서 떠오르는 만남과 특별한 기억으로 각인되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놋전 분식집이 그런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새로운 곳에서의 놋전분식도 여전히 사랑받을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습니다. 다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을 새 둥지에도 사람냄새 나는 온기와 함께 질박한 맛과 낭만 가득한 정취가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저는 아마도 앞으로 오랫동안 이 집을 습관처럼 쳐다보며 지나칠 것 같습니다. ‘빙긋’, 이곳에서의 여러 만남들과 취중진담을 떠올리면서 말이죠. 그림=김호연 화백 글=선애경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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