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원사(遠願寺)지 동·서 삼층석탑이 90여 년만에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1931년 이후 86년 만에 다시 해체 보수후 복원되는 것이다. 경주 원원사지(사적 제46호) 동·서 삼층석탑(보물 제1429호)은 경주 원원사지 안에 있다. 외동읍 봉서산 기슭에 조성된 원원사는 불교의 한 교파인 밀교(密敎)를 계승한 승려들이 김유신, 김의원 등과 함께 창건한 호국 사찰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9월 지진으로 어그러진 원원사지 동·서 삼층석탑의 보수 작업이 지난 5일부터 시작됐다. 조사((재)신라문화유산연구원)하고 설계하고 경주시가 발주하기까지 만 1년이 걸린 셈이다. 원원사지 서탑과 동탑은 지난해 안전점검에서 모두 남쪽으로 기울어졌으나 큰 변형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올 7월 다시 시행한 조사에서 석탑 두 기가 모두 기울고, 기단부 보수물질의 성능이 떨어져 2차 훼손 가능성이 제기됐었다. 특히, 서탑의 어그러짐이 더욱 심해 서탑 1층 옥개석(몸돌)까지 해체한 뒤 보수하고, 동탑은 현 상태에서 보존 처리를 실시할 예정이다. 기자는 지난 6일 원원사지 동서탑 보수 현장을 찾았다. 동서탑의 비계(탑의 높은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설치하는 임시가설물로, 재료운반이나 작업원의 통로 및 작업을 위한 발판) 설치작업이 한창이었다. 주목할 것은, 이번 보수 작업과정에서 전통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어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는 점이다. 전통적 석탑 해체 복원 방식의 국내 몇 안되는 기술자인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 제120호 이의상 석장이 직접 현장 지휘를 하고 있었다. 큰 나무 기둥 두 개를 세워 탑의 중심을 지지하며 조정줄을 ‘회롱틀(석재를 들어 내리기 위해 조정줄을 조절하며 돌리는 틀)’에 매고 작업하고 있었다. 회롱틀을 돌리면 나무기둥이 올라와 석탑재를 하나씩 해체한다고 했다. 매서운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인부 여럿이서 함께하는 작업 현장은 90여 년 전 1931년 당시의 복원 현장을 연상케 했다. -원원사지 동·서 삼층석탑, 1931년 복원된 뒤 90여 년 만에 다시 보수 원원사지를 지키고 있는 3층 동서쌍탑은 부분적으로 파손된 부분이 유난히 많은 편이다. 이 탑들은 1900년 초에 금당 앞에 무너져 있던 것을 1930년 교토제국대학의 건축학과 조수였던 노세우시조(能勢丑三)가 조선총독부에 건의해 복원하게 되었다. 한국의 십이지신상에 매료된 노세 우시조는 1930년 1월, 원원사지를 실측하고 같은해 9월, 원원사지 서탑지를 조사한다. 이듬해인 1931년 1월 원원사지 양 탑 석재를 실측하고 촬영하고 10월 원원사지 탑 기단 하부를 발굴한다. 드디어 원원사지 동서석탑을 재건하는데 사비를 들여 발굴까지 한 다음 당시 서봉총 발굴 참여로 널리 알려졌던 석당 최남주 선생이 참여해 경주고적복원회의 주도하에 1931년 가을, 탑을 복원했다. 상륜부는 노반과 앙화까지만 남아있다. 2중 기단위에 3층으로 건립된 이 탑의 전반적인 구성은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탑의 모습을 보여주며 기단과 탑신에 있는 뛰어난 조각으로 유명하다. 상층 기단 면석에는 4면에 3체씩 연화좌위에 평복을 입은 십이지신상이 조각되어 있으며 1층 몸돌 4면에는 사천왕상이 각 1구씩 아주 높은 돋을새김으로 조각돼 있다. 1층 몸돌에 사천왕상이 등장하는 가장 최초의 석탑이 바로 이 원원사 석탑이다. 이들 조각들의 섬세하고 유려함은 다른 석탑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이 쌍탑은 8세기 중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9세기에 유행하는 같은 형식의 석탑 중 가장 빠른 예다. 서탑은 동탑보다 파손이 더 심하다. 서탑의 사천왕상은 손상이 심해 온전한 것이 없다. 보물1429호로 지정된 것은 십이지신상이 온전히 탑신에 새겨져 있으면서 무사의 형상으로 릉을 수호하는 궤릉 등의 경우와는 달리 이 탑의 십이지신상들은 연화대 위에 있으며 뒤에는 비천의 무늬가 흐르고 있는 것에 기반한다. 신앙의 대상으로서의 십이지신상 가치를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비교적 또렷이 남아 있는 조각들은 신라 예술의 또 하나의 자랑이 될 만하다.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석장 투입, “재래식 전통 방식으로 신중을 기해 혼을 바쳐 보수작업 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본 서탑은 육안으로도 층층마다 어그러져 있었다. 돌을 얹어 쌓아 둔 것이므로 심하게 흔들린 경우, 어긋날 수 있다고 했다. 현재는 서탑의 1층 옥개석 윗부분부터 해체한다고. 1층 탑신은 ‘드잡이(내려앉거나 기울어진 전통목조건조물이나 석조건조물 등의 뒤틀림, 기울림 또는 파손된 부분을 바로잡고 원형에 맞게 복원함)’를 통해 정확하게 자리를 바로 잡는다고 한다. 향후 드잡이에서 그칠 것인지 1층 탑신 부분도 다시 해체해서 바로 잡을 것인지를 결정하게 된다. 문화재청과 문화재연구소 자문위원으로 구성된 자문단의 진단을 거친 후 자문의 방향에 의해 해체 범위와 규모 등을 이의상 석장과 함께 결정한다고 했다. 보수 기간은 착수일로부터 20일간으로 예정돼 있다. 현장에서 만난 이의상 석장(76)은 석가탑 자문기술지도위원(3년간), 첨성대와 다보탑 경주지진피해복구 자문 및 보수 실무 자문위원으로 경주와도 인연이 깊다. 지난해 지진으로 다보탑 난간이 떨어져서 ‘드잡이’로 바로 잡았던 그다. “이 석탑도 보물이니만큼 소중히 생각하면서 다치지 않게 신중을 기해 해체해서 복원까지 진행하는 것이 제 의무입니다. 탑의 상륜부서부터 조심해서 내려옵니다. 나무 기둥이 요즘의 크레인 역할을 하는 겁니다. 두꺼운 천으로 석탑재들을 감싸고 훼손되지 않도록 해체합니다. 또, 해체할시에는 풍화로 인해 탑의 중심을 잡기가 힘들기 때문에 탑신, 옥개석 등의 중심을 동서남북으로 잘 표시해 두었다가 복원시 정확하게 다시 조립합니다. 사실, 재래식으로 해체하는 것은 인사 사고나 탑의 안전성 도모 등 매우 위험스러운 일이긴 합니다만, 신중을 기해 혼을 바쳐 진행하고 있습니다” “평지에 있다면 현대적인 장비인 크레인으로 탑신을 옮겼겠지요. 편리하게 들어 올릴 수 있는 작업이었겠지만 원원사지는 크레인 장비가 들어 올수도 없거니와, 이 기회에 옛 방식으로 하자는 결정이 났다고 합니다. 크레인이 등장하기 전에는 전통방식으로 작업 했습니다. 아마도 이 쌍탑을 처음 복원한 1931년 당시에도 이런 방식이었을 것입니다. 1970년대 석굴암, 석가탑 해체시에도 이런식이었지요” 경주시 문화재과 문화재보수 담당자는 “동탑은 어그러짐은 없으나 풍화가 심하고 오래된 이끼와 누적된 오염 부분은 새로 세척을 하고 금이 간 부분은 다시 보존 처리를 해서 해체 없이 보존 처리만으로 마감합니다”라고 하면서 “서탑은 1층 옥개석까지 해체해서 세척해 조립하게 되는데, 전면 해체가 아닌 부분 해체 작업이 이뤄질 예정입니다. 수 일 내에 관련 전문 자문을 구한 뒤 최종 해체 방법을 논의 후 구체적인 방법이나 규모를 결정하고 해체를 하게 됩니다. 이번 보수 작업은 석탑 해체보수나 사찰 신축 방식에서 인력으로 석탑 각 부재들을 해체해서 다시 재조립하는 예전 방법으로 진행합니다. 원원사 경내로 대형 장비 진입이 어렵고 인력으로 할 수 있는 규모여서 문화재청 승인 과정에서 전통 방식으로 추진하게 됐습니다”며 작업 경위를 설명했다. -“사장되기 일보직전인 귀한 기술을 이번에 적용하게 된 것은 문화재 기술자로서 뿌듯” 김성도 현장 소장은 “문화재 수리 기술자로서 석탑을 해체하는 작업에 참여하게 돼 영광스럽습니다. 이 석장님과 함께 수작업인 전통적인 방식으로 일을 하게 됐다는 것도 기쁩니다. 사장되기 일보직전인 이 귀한 기술을 이번에 적용하게 된 것이 문화재 기술자로서 뿌듯하기도 하고요. 이 기술 보유자는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기술이지만 석재들을 떨어뜨릴수도 있고 석탑재들이 훼손될 수도 있어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작업입니다. 석재들이 풍화돼 있으므로 석탑재들을 부양해서 도르래를 걸어 내리게 됩니다”면서 평생 이런 기술을 못 볼 줄 알았는데 무척 행복하다고 전했다. 이의상 석장이 맡는 해체까지는 전통 방식의 기술이고 나머지 석재 보존 처리는 신기술이라는 설명을 보태면서..., “회롱틀을 설치해 작업하는 방식은 70년대 초반까지는 기본적이었지만 기술과 장비가 현대화되면서 이런 기술이 사장되는 것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이제 이 방식이 쓸모가 없어지면서 80년대 이후부터는 이 기술 자체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번 보수 작업을 지켜보고있는 원원사 현오 주지 스님은 “지진으로 동서탑의 기울기가 불안했는데 바로 잡을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우리가 상상했던 현대적 방식이 아니라 회롱틀을 사람의 손으로 돌려 작업하는 방식이어서 새삼 놀랐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번 기회에 한 가지 바람을 더 말씀 드리자면, 비가 오면 동탑에 비해 지형이 낮은 서탑 주변으로 물이 고인다는 것입니다. 절에서 궁여지책으로 작은 둑을 쌓아 쌍탑 옆 큰 계곡으로 물을 흘려보내고 있는데 이 물을 막지 않으면 바로 아래 원원사 경내 건물로 물이 떨어지곤 합니다. 이로 인해 서탑 주변부가 늘 습하고 마사토로 덮힌 지반이 푹푹 꺼지곤 합니다. 이것이 지반이 약해지는 원인이 되는 것 같습니다”라면서 서탑 주변 배수로 작업이 시급함을 강조했다. 바로 서탑 기단부 근처이므로 차제에 제대로 점검해야 할 정도로 상황은 심각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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