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한 장면이다. 전국에서 모인 청춘남녀 대학생들이 대학 캠퍼스 잔디에 누워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그때 여자 친구랑 곧 깨질 위험에 처한 남자 대학생이 신세한탄을 한다. 자신은 고향에 있는 여자 친구한테 지극정성인데 도대체 그 여자 친구 마음은 알다가도 모르겠단다. 도대체 여자들은 왜 그러냐고 카운슬링을 구하자 옆에서 과자를 집어먹던 여자 동기생이 이렇게 선문답(禪問答)식 역질문을 날린다. “니 여자 친구가 막 이사를 했어. 도로와 바로 인접해 문을 열면 매연이 막 들어와서 머리가 아파. 그렇다고 문을 닫고 있자니 방금 칠한 페인트 냄새로 머리가 지끈거려. 자기야, 어떡하지? 문을 여는 기 좋겠나 닫는 기 좋겠나?(경상도)” 한참 고민하던 그 남학생이 조심스레 입을 연다. “그래도 문을 닫는 게 낫~제(전라도).” 했더니 문제를 낸 여학생으로부터 돌아오는 대답은 “이런 상 등~신” 한다. 목소리 톤과 욕의 강도로 봐서는 정답이 아닌 모양이다. 잠자코 있던 다른 남학생이 “매연이 맞나 본디(충청도)?”한다. 역시 되돌아오는 대답은 “이것들 반피 아이가!” 한다. 정답은 “개안나, 니 병원가야 되는 거 아이가!”란다. 이 말을 들은 다른 남학생도 한참 만에 “아이, 그게 뭔 말이여(충청도)?” 의아한 표정이다. 자, 불쌍한 남자들은 이렇게 여자들이 쳐놓은 덫에 걸려들고 만다. 문을 열지 말지를 물어 놓고는 기대하는 답이 “니 개안나, 병원가야 되는 거 아이가?”라니, 남자들은 여자들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여자들의 화법, 보다 테크니컬하게 말해 본질-의미 관계를 남자들이 이해 못한 결과다. 가령 빙산을 떠올려 보자. 수면 아래는 절대 그 전모를 알 수 없다. 크기도 빙산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사람으로 치면 속마음이다. 잠재의식이라 해도 좋겠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본질 영역을 이치라고 할 때의 이(理)라고 한다. 반면에 수면 위에 떠올라 있는 일각(一角)은 빙산 전체로 볼 때는 아주 작다. 하지만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등 오감으로 체크가 가능하다. 속마음이 표정이든 행동 등으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표상(表象)라 할 수 있는 빙산의 일각을 그래서 사(事)라고도 한다. 강의실로 예를 들어보자. 학생들이 자꾸 시끄럽게 떠들어 마음이 편치 않는 선생님은 손가락으로 조용히 칠판을 두어 번 톡톡 친다. 이게 의미다. 비록 선생님이 말씀은 안 하셨지만 그 행동이 무엇을 말하는지 아는 학생들은 조용히 한다. 불과 3분밖에 안 지났지만 또 다시 웅성대자 선생님은 이제 발을 탕탕 구른다. 학생들은 또 조용해진다. 그러면 뭐해, 5분도 안 돼 또 떠들기 시작하니 급기야 선생님은 교탁을 주먹으로 탕 하고 내리치신다. 수업 마칠 때까지 교실은 쥐죽은 듯 조용하다. ‘좀 조용했으면’ 하는 선생님 마음(본질)이 칠판을 톡톡 치거나, 발을 구르는 행위로 구체화(의미)되어 전달된 것이다. 문을 열지 말지 물어 놓고는 자기 좀 알아봐주기를 바라는 여자 마음, 그걸 캐치할 수 있는 남자는 적어도 내 주변엔 없다. 남자들이 하수(下手)라서 그런 게 아니라 여자들이 너무 고수(高手)라 그런 거다. 어쩌다 카페나 식당 같은 데서 토닥거리는 커플을 보면 십중팔구 이런 본질-의미 게임 중이다. “오빠, 나 오늘 뭐 달라진 거 없어?” 하고 물어보는 여자 속은 ‘이미 답은 정해져 있어, 그걸 모르면 넌 오늘 끝장이야’ 하는 섬뜩함이 가득하고, 본의 아니게 시험에 오른 남자는 식은땀을 흘리며 이 순간을 무사히 넘기고자 온갖 머리를 짜본다. 남자들에게 무조건 불리한 이런 질문 그 이면에는 빙산과 일각은 한 몸이고, 본질은 의미로 구체화 되며, 의미는 본질을 담고 있을 때만 유효함을 전제로 한다. 불교에 염화미소(拈華微笑)라는 말이 있다. 하루는 영축산에서 설법 중이던 부처님께서 연꽃 한 송이를 높이 들어보이자 다들 영문을 몰라 고개만 갸웃거리는데, 마하가섭이라는 제자만이 그 뜻을 알고는 씨익~ 웃더라는 말이다.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오빠야, 문을 열까 닫을까?”또는 “여보, 나 오늘 뭐 달라진 거 없어?”하는 식의 질문은 그저 피할 게 아니다. 정답을 말하는 즉시 성불(成佛)하거나, 최소한 상대방의 기분이라도 좋아질 테니 남자들은 부디 잘 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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