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한족 출신인 우 명(36) 씨는 2007년 처음 한국에 왔다. 경주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고향후배가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 명 씨는 한국생활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후배가 한국에서 직장도 다니고 공부도 하는 모습을 보고 한국생활을 생각하게 됐어요. 중국에서 돈을 버는 것은 많이 힘들어서 한국에서 일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후배의 도움으로 자동차부품을 만드는 공장에서 검사하는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그때 당시에는 한국에서의 한달 급여가 중국에서 6-7개월 정도의 급여수준이었어요. 차이가 많이 났죠. 한국에서 일하게 된 것이 운이 좋았죠” 바랬던 한국에서의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그의 생활은 많이 바뀌었다. 한국에서 결혼, 예쁜 딸아이, 풍족하지는 않지만 한국에서의 삶이 만족스럽다고 했다. “남편과는 직장에서 만나게 됐어요. 같은 일을 하면서 많이 도와줬고,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결혼 하게 됐죠” 한국에서의 결혼 생활이 만족스러웠던 것은 무엇보다 아이를 가지게 된 것이라고. 아이를 좋아하는 우 명 씨에게 딸들은 선물과도 같았다고 했다. “8살, 6살, 3살 딸들을 키우고 있어요. 고향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죠. 부부가 맞벌이를 해도 아이 한 명을 키우기가 어려운데, 한국은 육아지원금도 나오고, 고등교육까지는 나라에서 시켜주니 너무 좋아요. 친구들이 저를 많이 부러워해요.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지만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도 있었다. 바로 한국어의 높임말의 문화와 주방문화 였다. “지금은 괜찮아요. 처음에는 높임말을 익히고 사용하는 것이 힘들었어요. 중국어나 영어는 높임말이 없잖아요. 한국어는 높임말이 있다는 것이 머리로는 이해해도 실생활에 적용하기가 많이 힘들었어요”, “중국에서는 보통 남자들이 주방일을 봅니다. 집에 손님이 찾아오거나 할 때도 대부분이 남자들이 해요. 그런데 한국은 그렇지 않았죠. 지금은 그런 것들을 모두 이해하고 알게됐어요. 남편은 저와 가족들을 위해 일을 하고 노력하는 남편에게 늘 감사하고 있어요” 3살인 막내 딸이 5살이 되면 육아를 도와주고 있는 우 명씨의 친정부모님들은 중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친정부모님들이 아이들 육아를 도와주기 위해 한국에서 지내고 있어요. 하지만 막내 딸아이가 5살이 되면 법적으로 부모님들은 더 한국에 계실수가 없어요. 제가 알기론 조선족을 제외하고는 친정 부모님의 이민이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런 부분들이 조금만 개선되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우 명씨는 현재 이중언어강사로 활동하며 지역에서 아이들에게 중국문화와 생활중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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