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뒤지다 우연히 재미난 광고 하나를 발견했다. 하이*켄 맥주 광고인데, 집에서 파티를 주관한 여자주인이 여인들을 데리고 이 방 저 방 소개한다. 만면에 미소(아마 당신들은 이런 거 없지? 하는 득의양양한 표정에 가깝다)를 지으며 마지막 방문을 열어제친다. 문이 열리는 순간 여인들은 “꺄~!” 하며 환희와 숭배(!)의 얼굴로 바뀐다. 그 방은 온갖 명품가방과 빨갛고 까만 구두로 가득 찬 드레스룸이었던 것이다. 환희와 부러움과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들이 여인들 얼굴에 번지는 순간, 저기 어디선가 남자들이 짐승과도 같은 소리를 지른다. ‘어? 저게 무슨 소리지?’ 하는 여인들의 얼굴은 소리 지르는 남자들과 오버랩 된다. 남자들은 바로 하이*켄 맥주로 가득찬 방을 보고 짐승처럼 포효했다. 남자 주인 역시 자기 비밀 아지트를 공개했던 것이다. 맥주(소주라도 상관없다)로 도배가 되다 시피한 방은 술 좋아하는 남자들에게는 로망 그 자체다. 모 방송에서 소주를 대하는 가수 김건모씨가 그 좋은 예다. 문제는 드론이다 낚시다… 남자들이 열광하는 아이템에 여자들은 전혀 관심이 없다는 거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아내가 이번에 큰맘 먹고 장만했다는 구두는 신발장에 있는 검은 구두랑 전혀 차이가 없어 보인다. 내가 볼 땐 그저 똑같은 구두일 뿐인데 이건 구두코가 어떻고 저건 수술이 어떻고 설명이 길어진다. 내가 딴 데 눈길을 돌려도 당장 얼굴이 일그러지는 걸로 봐서, 여자들에게 구두는 아주 특별한 그 무엇인가 보다. 부부가 외출할 때도 남자는 그저 면도만 하면 모든 준비가 끝나지만, 여자는 아니다. 머리를 하고 거기에 맞는 옷을 고르고 입어보고 어떤 게 좋은지 물어본 후(이미 답은 정해져 있지만), 거기에 맞는 핸드백을 고르고 또 거기에 맞는 구두를 고르다가, 뭔가 미세한 문제(!)가 발생하면 그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한다. 백화점 탈의실 앞에는 하염없이 여자 친구를 기다리는 남자들이 수두룩하다. 그들 손에는 여자가 입어본 옷이나 입어볼 옷들로 가득해 본인 핸드폰조차 쥘 수 없다. 남자도 처음에는 대충 아무 옷이나 사지 뭘 저렇게 까다로울까 하지만, 이내 기다림에 지쳐 널브러져 있는 남자들처럼 그저 숙명이려니 하고 받아들인다. 어떻게 아냐고? 죄다 소파에 기대 눈 감고 있는 그들을 보면 안다! 이성(異性) 간에만 그런 것도 아니다. 우리 아들은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는 그 덮개로 꼭 내 학위(學位) 논문집을 덮어둔다. 저걸 쓰느라 내가 머리가 다 빠졌건만 아들에게는 그저 넓적한 접시만도 못하니 말 다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을 해보면 아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 알 수 없는 내용의 어려운 책이지만 두께나 무게로 볼 때 최고의 라면 덮개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물론 나도 잘못이 없다. 비록 라면 덮개용으로 사용되긴 했지만 나 또한 그런 목적으로 논문을 쓴 건 아니기 때문이다. 나에게 소중한 것이 반드시 남에게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다. 대학 다닐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하루는 가까운 절에 갔었는데, 이른 새벽인데도 몇몇 인부들이 작업 중이었다. 이층짜리 건물을 올리는 제법 큰 공사였다. 경건한 눈을 하고는 경건한 법당을 우러르던 나는 보고야 말았다. 대패질을 열심히 하던 어떤 아저씨가 법당 뒤로 가더니 아무렇지 않게 소변을 보는 게 아닌가. ‘어떻게 신성한 사찰 경내에 실례를 할 수 있단 말이지? 화장실이 있는 걸 모를 리도 없을 텐데….’ 하며 언짢은 기분으로 향을 하나 피웠다. 108배(拜) 하는 내내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기도가 거의 끝나는 순간, ‘아, 저 아저씨는 법당이 아니라 작업장에 있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소를 가리지 못한 행동은 여법(如法)한 경내의 질서를 위해 당연히 지적받아 마땅하다. 그 절 스님에게는 좀 죄송한 이야기지만 법석(法席)이 야단(野壇)에 설치하는 이유 중에는 가치의 ‘다양성’에 관한 고려도 있었겠다 싶으니, 넓은 도량이 더욱 넓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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