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회 -황인숙 칠순 여인네가 환갑내기 여인네에게 말했다지 “환갑이면 뭘 해도 예쁠 때야” 그 얘길 들려주며 들으며 오십대 우리들 깔깔 웃었다 나는 왜 항상 늙은 기분으로 살았을까 마흔에도 그랬고 서른에도 그랬다 그게 내가 살아본 가장 많은 나이라서 지금은, 내가 살아갈 가장 적은 나이 이런 생각, 노년의 몰약 아님 간명한 이치 내 척추는 아주 곧고 생각 또한 그렇다 (아마도)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살아‘본’ 나이와 살아‘갈’ 나이 느껴보았을 것이다. 어느 시기를 거치든, 가장 나이 많고 노련한 행세를 하는 기간들이 있음을. 초등학교 6학년만 되면 저학년 후배들을 보고, “조 귀여운 것들을 그냥!” 하는 표정을 짓는다. 중고생만 보아도 무거운 책가방을 멘 채 “세상의 모든 고민은 내가 다 지고 있다”는 표정으로 걸어간다. 알고 보면 우린 매순간 늙은 기분으로 살아가는 게 아닐까? 송년회는 늙음을 실감하게 하는 자리다. 저마다 애써 우아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이래저래 한 살을 더 먹어야 한다는 부담으로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자리이기도. 그런데 시인은 그 자리에서 “칠순 여인네가 환갑내기 여인네에게” 했다는, “환갑이면 뭘 해도 예쁠 때야” 라는 말을 나누며 오랜만에 해맑게 깔깔 웃는다. 아, 그랬구나. 우리는 왜 항상 “늙은 기분으로 살았을까” 뭘 그리 심각하고 근엄하게 살아왔던가? 늙은이로 살아가다 이 짧은 생 다 저물 뻔했구나! 다. “지금은, 내가 살아갈 가장 적은 나이” 이 단순함과 간명한 실감. 이것은 절대 노년의 시기에 지금을 미리 바라보는 자의 태도라거나 늙음을 잊어버리자는 ‘몰약’ 먹은 행위가 아니다. 이제 곧 송년회 시즌이다. 그 모임들마다 “내가 살아본 가장 많은 나이”를 넘어 “내가 살아갈 가장 적은 나이”라고 신나게 말해보자. 그리하여 동요「앞으로」라도 신나게 부르면서 “온 세상 어린이들 다 만나고” 올 태세로 살아볼 일이다. -------------------------------------------------------------------- 손진은 시인 약력 경북 안강 출생. 1987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95 매일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시집 『두 힘이 숲을 설레게 한다』, 『눈먼 새를 다른 세상으로 풀어놓다』, 『고요 이야기』, 저서 『서정주 시의 시간과 미학』외 7권, 1996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경주대 교수.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