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준거(여·44) 씨는 2013년 목적지도 없이 한국으로 여행을 왔다. 예정도 계획도 없이 버스를 타고 내린곳이 경주였고, 그대로 경주에서 지내게 됐다. “한국에 와서 무작정 버스를 타고 도착했던 곳이 경주였어요. 기분전환 삼아 한국으로 여행을 온 것 이었는데 이상하게 이곳이 좋아서 여기에 정착해버렸어요” 하지만 관광비자로 왔던 터라 준거 씨가 계속해서 한국에 머물 수는 없었다. 비자는 끝나가고 계속해서 경주에 머물고 싶었던 준거 씨는 불법인 것을 알지만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경주에 체류했다. “저의 행동이 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돌아가고 싶지 않았어요. 이곳에 계속 머물고 싶었던 마음이 너무 간절했거든요” 준거 씨는 그렇게 불법체류자로 숨어 지내는 생활이 시작됐다. 한국말을 할 줄 모르는 상태에서 식당일을 했고, 한국어를 잘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급여는 많이 받지 못했지만 불법으로 체류하고 있던 터라 어디에 하소연 하지도 못하고 그렇게 2년을 지냈다. “참 많이 힘들었어요. 한국말을 못하니 여자화장실을 찾아가는 것도 어려웠고, 물건을 사는 것도 모두 어려웠죠. 그리고 사실 제일 힘들었던 것은 일하는 시간을 빼고는 집밖에 나가지 않고 숨어있어야만 했던 것이에요” 이곳이 좋아서 선택한 일이지만, 숨어 지내는 생활이 힘들고 고향의 가족들이 그리워서 중국으로 돌아갈 마음이 들어 자진귀국을 준비하던 때가 2015년. 불행 중 다행이었을까. 함께 일했던 남편과 결혼하면서 불법이 아닌 합법으로 한국에 체류할 기회가 생긴 것. “남편이 많이 도와줬어요. 불법체류였던 저와 결혼하는 것을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그리고 결혼을 한다고 해서 비자가 나올지도 몰랐던 상황인데 그런 저를 위해서 큰 결심을 해줬던 거죠. 결혼을 하고 합법으로 비자를 받으려면 다시 중국으로 귀국을 해서 비자를 새롭게 받아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남편이 많이 도와줬어요”, “중국에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아 걱정을 많이 했지만, 남편이 제가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게 여러 방면으로 알아보고 애써줬어요. 한국어자격증을 따는 것도 많이 도와줬죠. 저에게는 정말 고마운 사람이에요” 정식 비자가 나올 때까지 중국에 돌아가 한국어공부를 했고, 남편과도 매일같이 영상통화로 안부를 물으며 지내며 한국으로 돌아올 날을 기다렸다. 6개월 만에 비자는 나왔고, 정식으로 한국생활을 시작하게 된 손준거 씨. “꿈만 같습니다. 정식으로 한국에서 가정을 가지게 될 줄은 말이죠. 이제는 당당하고 더 열심히 이곳에서 생활할거에요” 준거 씨는 현재 자신의 한국생활을 도와준 주변사람들을 위해서 지역에서 봉사활동도 하며 열심히 지내고 있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