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고은 詩 ‘가을편지’중에서.
그렇다. 곱게 손편지를 써서 그리운 누군가에게 붙여보고 싶은 요즘이다. 경주의 사계는 어느 계절 하나 버릴 것이 없다. 특히, 풍성하게 무르익은 절정의 가을도 아름답지만 만추의 서정은 가히 시적(詩的)이다. 만추지절인 경주의 요즘은, 연일 관광객과 시민들에게 잊혀져있던 감성을 일깨우고 있다.
굳이 가을을 노래한 유명 서사나 시를 들추지 않아도 우리는 시인이 된다. 왕릉에도, 옛 서원과 사찰에도, 경주의 산야 어디에도 늦가을의 서정들이 알곡처럼 여물었다.
11월 중순인데도, 문화 유적을 품은 경주 곳곳에는 햇빛에 반짝이는 붉은 단풍이며 은행나무의 노란색 향연이 아직도 물기를 머금은 채 유혹적이고 호사스럽기까지 했다.
‘묶어두고 싶은, 묶어서 한 다발의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은 경주의 유명한 늦가을 풍경들이 지천인 가운데, 아직 덜 알려져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숨은 명소 다섯 군데를 찾아보았다. 감포댐, 건천 모량역, 입실 모화리 원원사지, 배반동 옥룡암, 경주역 뒤켠의 급수창고(일명 물탱크) 등의 보석같이 아름다운 풍경을 소개한다.
-감포읍 일대 숨겨진 명소 감포댐… 바다와 등대, 돌산(바위산), 풍력 발전기 어우러져 이색적인 가을 절경 뽐내
10일 오후 4시경 감포댐에 도착했다. 기자도 이곳은 처음 와 본 곳이어서 감회가 남달랐다. 감포정(감포댐을 조망하기 위한 정자)에 오르니 감포 앞바다와 댐의 물길이 함께 보였다. 감포 앞 바다에는 멀리 등대가 보이고 홍엽으로 물든 돌산(바위산)이 어우러져 이색적인 가을 절경을 뽐내고 있었다.
댐에는 저수지 물길이 굽이치고 자연 친화적인 감포댐 풍력 발전기(2015년 준공) 한 대가 절경을 연출했다. ‘고요하고 아름답다’는 표현이 절로 나올 즈음, 노을로 물든 저수지엔 한가로운 오리떼가 지나갔다. 댐 둘레길(주민편의도로)을 걸으니 온갖 시름이 잊히는 듯 하다.
한편, 2006년 준공된 감포댐은 인근지역 1만 가구에 하루 4500톤의 생활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높이 35m, 길이 108m, 저수용량 240만톤 규모로 완공됐다. 감포댐은 상습 가뭄지역인 경주시 동부 주변지역(경주 감포, 양남, 양북 주민들과 포항 장기면 주민들)에 안정적인 용수를 공급하고 있다고 한다.
-모량역, 그리울 ‘모량역’...샛노란 은행잎은 역사(驛舍)와 조화 이뤄 쓸쓸한 간이역 서정 물씬
‘모량역은 종일 네모반듯하다./ 면소재지 변두리 낯선 풍경을/ 가을볕 아래/ 만판 부어놓는다. //중략, 문인수 詩 -모량역 중에서.
경주시내에서 건천으로 가는 국도를 한참 가다가 좁은 농로를 따라가다보면 멀리 아련하게 잡히는 적막한 모량역(건천읍 내서로 1424-21)의 피사체가 보인다. 모량역은 1922년 11월 광명간이역으로 개업해 영업했으며, 지금은 경주 11개 간이역 중 하나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모량역은 건물의 뼈대는 당시 그대로다.
모량역의 풍광과 역사는 소박하게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2012년 2월, 기자가 연재한 간이역으로 찾은 지 5년여 만에 모량역을 다시 찾았다. 모량역 앞마당에는 나무들만이 여전했는데, 오랜 수령의 벚나무 잎들은 다 지고 있었지만 플랫폼 쪽에 있는 제법 큰 은행나무의 잎들은 샛노랗게 절정이었으며 떨어진 잎들은 노란 융단을 깐듯했다. 이들은 역사와 조화를 이뤄 쓸쓸한 간이역의 서정을 물씬 풍겼다. 한동안 먹먹하고 ‘뭉클’했다.
90년의 세월을 모량리 일대의 주민의 애환을 벗해주었던 모량역에는 적당히 녹이슬어 찌뿌둥해진 옛날 역명판도 그대로였고 적막한 앞마당도 그대로였다. 봄이되면 역 마당의 벚꽃나무가 참 보기 좋다는 모량역. 혹자는 황금벌판 사이의 가을 모량역을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역. 한때는 누군가의 통학길로, 나들이길로, 장보러 가는 길을 지켜봐 주었던 모량역은 기능은 상실했지만 아직 외형은 건재했다.
모량역은 코레일 대구본부 소속역으로, 2020년경 동해남부선 복선공사가 완료되면 경주의 다른 역들과 마찬가지로 신경주역과 통합될 예정이다. 수명이 얼마남지 않은 것이다. 이런 역사들을 보고 있으면 안타깝지만 딱히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모량역은 동대구에서 포항간 통근열차가 2008년 1월 1일부터 폐지되면서 여객 취급이 중지됐다. 본선1선, 부본선1선, 측선1선으로 총 3선의 선로를 지니고 있다.
모량역을 나와 인근에 있는 모량 초등학교를 들린다면 금상첨화의 감흥을 얻을 수 있을듯 하다. 작은 교정을 감싸안고 있는 플라타너스 색들의 향연을 즐길 수 있을테니...
-근대 건축물 경주역 급수탑 주변은 은행나무, 감나무와 함께 한가로운 늦가을 서정 ‘한창’
지난 13일 찾은 경주역 급수탑 뒤쪽에는 감잎이 다 떨어진 채 빨갛게 익은 감들만이 달려있는 감나무와 오버랩 되면서 한가로운 늦가을 서정을 돋우고 있었다.
성동동 40번지(원화로 266)에 위치한 경주역은 1918년 이래부터 경주시의 관문이었다. 경주 역사(驛舍) 뒤켠에 있는 급수탑도 그 세월이 90여 년에 육박한다. 근대건축사에 있어 철도 부설 건축물들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경주기관차 승무사무소가 1928년에 경주기관구로 문을 열었으니 경주역의 급수탑도 이 시기와 비슷한 것이다. 1927년(일제강점기)에 경주기관구 건립과 함께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급수탑은 철근콘크리트 골조구조물이며 높이 약 20m, 지름 약 5m로 버섯모양의 원추형 구조물로써 용수의 저장능력은 약 150t이다. 급수의 원리는 수돗물을 끌어 올려 탱크에 물을 받아 그 압력의 힘으로 물을 기관차에 공급하는 것으로 당시, 운행되던 증기기관차 보일러의 증기발생용 용수를 저장하여 증기기관차가 운행도중 증기발생용 용수를 급수하거나 경주기관구에 입고하는 증기기관차의 증기발생용 용수보충을 목적으로 했다.
현재는 기관차가 운행되지 않는 관계로 경주기관차 사무소의 음용수를 제외한 모든 용수를 저장, 공급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전국적으로 증기기관차용 급수탑은 여러 군데 있으나 지금까지 사용하는 급수탑은 경주역 급수탑이 유일하다고 한다. 이 급수탑은 역사적 가치와 근대건축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인정하고 지속적 보존을 통해 경주역사와 함께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옥룡암’, 가을에는 탑곡 계곡길과 옥룡암 경내 형형색색 단풍이 압권
옥룡암(玉龍庵)은 경주 배반동 남산의 동북쪽 기슭의 탑곡이라 불리는 곳에 자리잡고 있는 대한불교정토종 소속의 작은 사찰이다. 동남산 둘레길에 있는 소담한 옥룡암의 가을은 알만한 이들이 즐겨 찾고 있는 가을 명소 중 명소다. 이곳은 오랫동안 옥룡암이라 부르다가 2000년대 중반 쯤 불무사(佛無寺)로 사명을 변경했는데 여전히 옥룡암이라 부르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대웅전 왼편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 올라가면 웅장하게 서 있는 ‘경주 남산 탑곡마애불상군(보물 제201호로 지정)’을 만날 수 있다. 또, 시인이자 독립투사였던 이육사가 1936년과 1942년 이곳 옥룡암에 자취를 남겼고(관련 기사 본지 1250호), 한때는 경주지역 고시생의 공부처로도 유명했다고 한다.
옥룡암은 작은 암자이지만 사계절 비경을 자랑한다. 가을에는 탑곡 계곡길과 옥룡암 경내 형형색색의 단풍이 압권이다. 12일 찾은 옥룡암은 여전히 고즈넉한 가운데 간간이 등산객들의 발길은 이어졌다. 관계자는 사진작가들도 이즈음의 옥룡암을 자주 찾고 있다고 전했다. 고단한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이 힘들다면 지척에 있는 옥룡암을 찾아 위안 받으시라.
-외동읍 모화리에 있는 폐사지 원원사터, 폐허미와 유장한 아름다움은 가을에 더욱 빛나
현존하는 경주에 있는 폐사지는 신라의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 피웠던 강력한 상징물로 오늘에 유전하고 있다. 폐사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폐허미와 유장한 아름다움은 가을에 더욱 빛난다. 13일 찾은 원원사터는 외동읍 모화리 봉서산 기슭에 있다.
모화리 마을 입구에서 한참을 올라가면 원원사터를 만날 수 있다. 원원사는 석축을 이용한 가람으로, 비탈진 지형 위 높은 언덕에 안정감있게 위치하고 있다. 현재의 원원사는 대한불교천태종에 속하는 사찰로 옛 절터 아래 36년전에 새로 지은 소규모 사찰이다. 깊은 골짜기를 따라 산 그림자가 그윽해질 즈음 원원사 경내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원원사 경내를 지나 오른쪽 오솔길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보니 이내 옛 절터가 시야에 가득찼다. 그윽한 소나무며 석재들은 더욱 추색을 짙게 하고 있었다.
원원사지를 지키고 있는 3층 쌍탑은 부분적으로 파손된 부분이 유난히 많은 편이다. 이 탑들은 1900년 초에 금당 앞에 무너져 있던 것을 1930년 교토제국대학의 건축학과 조수였던 노세우시조(能勢丑三)가 조선총독부에 건의해 복원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동서탑의 다소 훼손된 탑신과 옥개석은 더욱 폐허미를 느끼게 했고 오히려 고색을 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