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부한 역사적 콘텐츠가 있는 천년고도 경주의 역사와 문화를 외국인들에게 알리기에 관광안내책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렇기에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문화관광해설사와의 동행은 아주 특별하다.
천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대릉원. 가을 단풍과 어우러져 경주를 찾은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관광명소 중 하나인 대릉원에서 다시 찾고 싶은 경주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경주문화관광 영어해설사 박영철(51) 씨.
“중학교 영어시험에서 최하점수를 받고 어린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죠. 그날부터 정말 열심히 영어공부를 했어요. 그 계기로 지금은 영어가 일상이 됐죠”
1988년 경주에서 영어가이드를 시작으로 30여 년 베테랑 경력인 박영철 씨. “여든이 넘으신 어머니께서 고향 안동에 계셔요. 쉬는 날이면 어머님과 시간을 보내죠. 제 명함에도 어머니가 계시는 고향집 주소가 적혀있어요. 경주를 찾은 외국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감사의 편지와 사진을 보내오곤 하는데 그때는 이 일에 정말 보람을 느껴요”
요즘 어머님께서 무릎이 좋지 않아 더 자주 안동에 내려가 보필하고 있다는 박 씨. 알고 보니 그는 선천적 시각장애를 갖고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선생님께서 칠판에 적으신 글이 보이지 않았어요. 그것을 아신 선생님께서 부모님께 말씀 하셨고 부모님도 그때 제 눈에 이상이 있음을 직감하셨죠. 하지만 그때는 정확한 병명이 나오지 않아 별다른 치료는 없었어요. 다행히 안경으로 어느 정도 교정도 됐구요”
그는 망막색소변성증이란 질환을 앓고 있다. 이 질환은 눈에서 빛을 받아들이는 시각세포가 손상돼 눈이 어둠에 적응하지 못해 시력이 점차 떨어지면서 실명의 위험이 높다.
시각 장애를 갖고 있는 박 씨는 직장생활을 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영어 강의와 영어 가이드 등의 일을 하게 된 것. 자신의 특기도 살리고 다양한 외국인 친구들도 만날 수 있는 일을 택한 것이다.
“6개월마다 안과검사를 받으며 여러모로 꾸준히 노력하고 있어요. 다행히 남들에 비해 진행이 조금 더딘 편이고, 오른쪽 눈은 지난 검사 때보다 더 나아지고 있다네요. 미국관광객들이 오면 혹시 그곳에는 망막색소변성증의 치료법이 있는지 물어보기도 했어요”
26년 전 미국에서 관광 온 닥터 웰레브씨는 ‘미스터 박, 실망하지마라. 망막색소변성증 치료법을 현재 개발 중이니 곧 치료법이 나올 것이다’라고 그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남겼다고.
이 질환의 치료법은 2014년 미국에서 성공을 거뒀고, 국내에서도 올해 5월 말 서울아산병원 안과 윤영희 교수팀이 국내 처음으로 망막색소변성증 환자에게 인공망막 이식수술을 시도해 성공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에 기초수급자인 박 씨에게는 2억에 이르는 수술비는 터무니없이 큰 비용이었다.
“지난 8월 굴지의 대기업에서 저같이 시력이 낮은 사람들을 위한 가상현실 시각 보조앱 ‘릴루미노’를 출시했다네요. 그것을 사용하면 0.1인 시각장애인의 시력이 0.9까지 향상될 수 있대요”
“한국에서 ‘망막색소변성증 치료법’의 성공과 ‘릴루미노’의 출시는 저와 같은 시각장애인에게 정말 큰 희소식입니다. 지금 제가 처해 있는 상황에서 당장 수술은 힘들죠. 하지만 다시 볼 수 있다는 희망과 함께 그동안 포기해야만 했던 꿈을 다시 도전해 보려 합니다”
시력저하와 함께 경제적인 이유로 휴학을 하게 되면서 교수의 꿈을 잠시 접었던 박 씨. 그는 시각보조앱 출시를 계기로 못 다한 꿈을 이루기 위해 기나긴 휴학기간을 끝내고 드디어 복학을 앞두고 있다.
박 씨는 “그동안 주변인들의 관심과 도움, 배려가 있었기에 포기와 좌절을 뒤로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제 나이가 51살이에요. 늦은 나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한 지금이 저에겐 기회이며, 꿈을 향해 열심히 달릴 거에요. 석사를 마치면 박사과정을 거쳐 유능한 지도자가 되고 싶어요. 세계적인 관광도시 경주에서 전 세계 관광산업의 주역들을 성장시키고 싶습니다”며 희망찬 포부를 밝혔다.
동료 문화관광해설사 김경애 씨는 “박영철 씨는 장애를 극복하고 아름다운 봉사정신으로 경주관광의 최일선에서 외국관광객들께 친절과 미소로 천년역사의 숨결을 전하는 자랑스런 동료입니다. 어려운 여건을 희망으로 곧추세우는 장한 삶의 모습에서 ‘인간은 참 위대하다’라는 감동을 받게됩니다”고 박 씨를 추켜세웠다. 그는 또 “주위를 밝게하는 지극한 효심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가는 박 씨야 말로 장애의 틀을 깨고 거듭나는 인간 승리자라 할 수 있습니다. 작은 배려의 손길을 나누며 용기를 주고 힘을 보태는 동료로 따뜻한 사회구성원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