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액 당시 이름난 서예가인 원진해가 쓴 도동문(道東門)이라는 편액이 걸린 외삼문을 들어서자 2층 누각인 영귀루(詠歸樓)가 눈앞에 다가선다. 위층은 사방이 트여 있고, 계자 난간을 둘렀으며, 아래층 중앙은 통로로 사용되고 있다. 영귀루 아래 놓여있는 플라스틱 의자가 눈에 거슬린다. 아마 서원 마당에서 행사가 있을 때 사용하고 있는 것인 듯하다.
영귀루 바로 오른쪽으로 구암선생의 비각이 있다. 선생의 성씨는 이(李), 이름은 정(楨), 호가 구암(龜巖)이다. 경주부윤으로 부임하여 이곳에 처음으로 서악정사를 건립한 분이다. 이 서악정사가 훗날 서악서원이 된다.
영귀루 아래를 지나면 3단으로 된 기단 위에 ‘서악서원’이라는 현판이 걸린 건물이 나타난다. 이 현판 글씨도 원진해가 쓴 것이다.
강당 안쪽 중앙에 ‘시습당(時習堂)’이라는 당호가 걸려있다. ‘시습(時習)’은 『논어』 「학이」편 첫 구절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說乎)’에서 취한 것이다. 이곳은 교육 장소인 동시에 유림의 회합 장소로 사용하였다.
시습당은 앞면 5칸에 옆면 3칸으로, 왼편으로 진수재(進修齋), 오른편으로 성경재(誠敬齋)를 두었다. ‘진수’란 ‘덕과 학문을 닦는다’는 의미이고. ‘성경’은 ‘정성을 다해 공경한다’는 의미로 유학의 중요 덕목이다. 시습당 앞 양쪽에는 정료대가 놓여있다. 야간에 사원의 조명을 위해 횃불을 올려놓던 대이다.
중정을 가운데 두고 동재는 절차헌(切磋軒), 서재는 조설헌(譟雪軒)으로 유생들의 숙식 장소로 사용하던 건물이다. 시습당 뒤와 내삼문 사이 마당은 현재 궁도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내삼문은 굳게 잠겨 있다. 그 안은 제향을 위한 사우(祠宇)로 앞면 3칸에 옆면 2칸의 겹처마 맞배집이다. 이외에도 향사를 지낼 때 제수를 마련해두는 전사청(典祀廳), 물품을 관리하는 고자실(庫子室) 등이 있다. 강당 뒤로 사당을 배치하여 서원의 전형적인 모습인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식을 보이고 있다. 현재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해마다 2월 중정(中丁: 두번째 丁日)과 8월 중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조선 시대의 야담집 『천예록(天倪錄)』에는 사액을 받을 당시 김유신과 관련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김유신과 설총, 최치원 세 사람의 위패를 모두 모신 경주의 서악정사가 조정으로부터 사액을 받게 되었을 때, 어떤 서생이 설총은 중국의 유교 경전을 이두로 풀이하여 가르친 공적이 있고, 최치원은 문장으로 중국에까지 이름을 떨친 공적이 있지만, 김유신은 신라의 일개 무장으로서 유학자들에게 모범이 될 만한 일을 한 것이 없다며 김유신의 위패를 서원의 제사에서 뺀 다음에 조정의 사액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얼마 뒤, 서생이 서원에서 깜빡 잠이 들었는데 갑옷을 입은 무사들이 서생의 머리채를 잡고 서원 뜰에 꿇어앉히고, 사방에 무기와 갑옷을 갖춘 병사들이 늘어 선 가운데, 김유신이 나타나 서생을 향해 호령하였다.
“유학자들이 중히 여기는 덕목이 충(忠)과 효(孝)가 아니던가. 내가 살아서는 위태로운 나라를 위해 전장에 나아가 어려움을 구제하고, 삼국을 통일하는 공을 세웠으니 그것이 충이고, 공을 세우고 입신양명하여 내 집안과 부모의 이름을 빛나게 했으니 그것이 효인데, 네까짓 놈이 어찌 함부로 이야기하느냐.”
잠에서 깨어난 서생은 두려워하며 시름시름 앓다가 이틀 만에 피를 두 말이나 토하고 죽고 말았다.
현재 이곳 서악서원에는 음풍농원 선비체험, 신화랑 풍류체험, 고택 음악회 등 여러 가지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사람이 거주하지 않은 고택은 죽은 공간이 된다. 여러 체험 프로그램 운영을 통하여 이를 잘 활용하면 옛 선인들의 채취를 맛볼 수 있고 건물의 유지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도동문을 나서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앞으로 저 멀리 갯들이 눈맛을 시원하게 하고 선도산이 서원 뒤쪽을 둘러싸고 있다. 입지가 예사롭지 않다.
『순자(筍子)』 「권학(勸學)」편에 이런 구절이 있다. ‘蓬生麻中 不扶而直(봉생마중 불부이직)’“다북쑥도 삼밭에서는 곧게 자란다”는 말이다. 이는 교육에서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입지가 뛰어난 이곳 서악서원에서 공부하던 옛 유생들이 모두 올곧은 선비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