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속이 쓰렸다. 왜일까 곰곰이 생각해봐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문득 손에 들려있는 네 잔째 커피가 눈에 들어온다. 언제부터인지 식사 후에는 꼭 달달한 커피 한 잔씩을 마시는 습관이 생겼다. 와이프는 커피 마실 줄 모른다고 핀잔이지만 난 그래도 캬라멜 마끼아또(Caramel Macchiato)처럼 심(!)하게 단 커피가 좋다. 누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제일 편한 게 커피다. 수업을 마치고 학생들과 가볍게 토론할 때도, 피곤한 몸을 추스르는 데에도,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크게 틀어놓은 노래와 함께하는 커피만 한 게 없다. 커피는 어느새 나의 삶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어릴 적 아버지가 식사 후에 숭늉으로 입가심하시던 걸 따라하던 때가 얼마 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아이스크림 할인점이나 대만(臺灣)식 카스테라는 반짝 생겼다 없어지지만, 커피 전문점은 이상하게도 비온 뒤 솟아나는 죽순마냥 늘어나기만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커피를 좋아해서일까, 아니면 커피를 두고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걸 즐기기 때문일까? 우리만 그런 게 아닌 모양이다. 차(茶)를 주로 마시는 중국도 상황은 비슷하다. 미국 최대 커피 프랜차이즈인 스타벅스는 1991년 중국에 상륙한 이래, 올해 상하이에만 매장 수가 600여 개에 이른다고 한다. 미국 뉴욕에 있는 매장 수의 거의 2배란다. 작년 한해 중국 전역에 500개의 매장을 열었다고 하니 하루 1.4개꼴로 커피 매장이 문을 연 셈이다. 이런 속도로 볼 때 머지않아 중국 내 매장 수는 미국을 뛰어넘을 거라는 관측이 있다. 커피의 힘이다. 커피를 가장 감동적으로 묘사한 사람은 외교관 샤를 모르스 드 탈레랑 (Charles-Maurice de Talleyrand)이 아닐까 싶다. “커피의 본능은 유혹이다. 진한 향기는 와인보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은 키스보다 황홀하다.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천사와 같이 순수하고, 사랑처럼 달콤하다” 프랑스인 외교관이라 그런지 정의도 로맨틱하다. 와인과 키스를 잘 섞고 순수와 사랑에다 부드러움과 황홀을 가미하니, 그게 바로 커피라는 식이다. 터키에도 비슷한 속담이 전해오는데, ‘커피는 지옥처럼 검고, 죽음처럼 강렬하고, 사랑처럼 달콤해야 한다’. 또 있다. 헝가리의 ‘좋은 커피는 악마처럼 검어야 하고, 지옥처럼 뜨거워야 하며, 키스처럼 달콤해야 한다’는 격언도 같은 맥락이다. 커피는 원래 뜨겁게 마시는 모양이다. 어디에도 냉커피에 대한 언급이 없으니 말이다. 커피로 지옥을 경험하고 사랑을 배워서일까, 커피를 애호하는 예술가도 많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Johann Sebastian Bach)가 흔히 ‘커피 칸타타(coffee cantata)’로 알려진 〈칸타타 BWV〉를 작곡했다. 커피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딸과 커피를 그만 마시라고 다그치는 아버지가 승강이를 벌이며 주고받는 풍자적인 아리아에, “오 이 커피는 달콤하구나. 천 번의 키스보다 달콤하고 백포도주보다 부드럽구나! 커피, 커피야말로 내가 마셔야 할 것이야. 나를 기쁘게 하고픈 사람이 있다면 내게 커피를 따르게 하세요” 라는 대목이 나온다. 바흐 자신도 커피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모닝커피가 없으면 나는 그저 말린 염소고기에 불과하다”고 했을 정도다. 마지막으로 터키 커피에 관한 재미난 문화가 있어 소개한다. 터키에서는 결혼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 전 신랑과 그 가족은 예비신부의 집을 방문한다고 한다. 이때 신부 측에서 커피를 대접하는데, 신랑이 마음에 들면 설탕을 잔뜩 넣어 ‘당신이 마음에 든다’는 신호를 보낸다고 한다. 그럼 마음에 안 들면 설탕 대신에 후추나 소금을 넣어 거절을 표시한다고 한다. 신랑 측에서도 신부와 처가가 마음에 들면 커피를 싹 비우고, 신부가 마음에 안 들면 커피에 입을 안 댄다고 하니 재미난다. 커피의 그런 중요한 사회적 역할 때문인지, 터키에서 남편이 아내에게 제대로 커피를 제공하지 못하면 이혼 사유가 된다고 한다. 거래처 사람과의 커피에만 익숙한 우리 한국 남편들에게 긴급 제안한다. 집 주변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아내와 향기 좋은 커피를 나누며 데이트하던 옛 추억을 한 번씩 되살려보시는 건 어떨까? 아내도 걱정 마세요. 칼로리가 좀 높은 걸 시켜도 남편과 즐겁고 행복하게 마시면 절대 살 안찌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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