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에서 경우의 수는 우주에 있는 모든 원자의 수보다 많다는데 이 바둑의 고수를 차례로 무너뜨린 알파고 리, 알파고 마스트, 또 다른 차원의 알파고 제로가 출현하였다. 의사보다 완치율이 높다는 인공지능 왓슨의 암 치료 사례, 그림을 그리고 작곡을 하는가 하면 인공지능이 쓴 소설이 문학상 공모전 예심을 통과했다는 이야기 등. 최근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의 폭풍이 걷잡을 수 없는 기세로 우릴 덮치고 있다. 인간이 하던 일의 대부분을 인공지능이 대신하면서 인간 고유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의 중요성이 더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교육도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인 인성과 창의성, 소통 능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인공지능의 파고로 앞날이 불안하다. 읽고 있던 4차 산업에 대한 책을 덮고 서악서원을 찾았다. 서원은 조선 시대 사림들이 지방에 세운 사립학교이다. 본받을 만한 옛 유학자들을 사당에 모신 뒤 제사를 지내고 학생들을 모아 유학을 가르쳤다. 유학은 공자와 그 제자들의 가르침인 경전과 이 경전에 근거한 후세 학자들의 체계적인 학문을 이르는데,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가 그 핵심으로 올바른 인성을 함양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인공지능 시대에 적합한 교육의 모델을 서원 등의 옛 교육제도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경주에는 서악서원을 비롯하여 안강에 옥산·직천·구강·장산서원, 내남에 용산서원, 강동에 동강·운곡·단구서원, 현곡에 귀산서원, 양남에 나산서원 등이 있다. 이 중에서 서악서원은 옥산서원, 용산서원과 함께 경주의 3대 사액서원이며, 또 옥산서원과 함께 고종 때의 철폐령 이후 남은 47개소 서원 중 하나이다. 서악서원은 신라 때의 인물인 김유신과 설총 및 최치원을 배향하고 있어 고려나 조선시대의 유학자를 모시고 있는 대부분의 다른 서원과는 차이가 있다. 서악서원 이외에 예외적으로 신라 때의 학자인 최치원을 배향한 서원으로는 안동의 용강서원, 청도의 학남서원, 정읍의 무성서원, 군산의 문창서원 등이 있다. 경산의 도동서원에는 설총을 배향하고 있다. 이 자리에 처음부터 서악서원이 설립된 것은 아니었다. 1561년(명종 16) 이정(李楨)을 중심으로 한 지방유림에서 김유신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서 이곳에 사당을 세웠고, 1563년(명종 18) 신라 10현으로 받들던 선현들 중 설총과 최치원의 위패를 추가 배향하면서 서악정사(西岳精舍)로 창건하여 향사를 지내오다가,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 이후 1600년(선조 33)에 경주부윤 이시발이 건물 일부를 중수하고, 1602년(선조 35) 묘우(廟宇)를 새로 지었다. 1610년(광해군 2) 경주부윤 최기가 강당과 동재·서재를 중창하였다. 1623년(인조 원년)에 국가가 인정한 사액서원으로 ‘서악(西岳)’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1646년(인조 24)에는 부윤 이민환이 영귀루를 중건하였다. 당시 이곳 서악서원은 유학을 강론하고 경주의 학풍을 이어가는 중심이 되었으며, 흥선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에도 폐쇄되지 않았다. 그 후 고종 10년(1873년)과 고종 19년(1882년), 고종 29년(1892년), 고종 31년(1894년) 등 수차례에 걸쳐 중수를 하여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해 왔다. 서악서원은 태종무열왕릉 이웃에 자리하고 있다. 대경로를 벗어나 서악2길로 접어드니 유난히 꽃이 큰 구절초가 반긴다. 활짝 핀 꽃잎이 불그스레 물들었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을 만나 부끄러운가 보다. 경주농기계임대사업소를 돌아가면 서악서원 주차장이다. 정문으로 들어서기 전에 담장 밖을 한 바퀴 돌아보니 담장 옆으로 형형색색의 화초가 청초한 웃음을 머금고, 텃밭에는 각종 채소를 재배하는 사람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이런 곳에서 텃밭이나 가꾸면서 살고 싶다. 너무 평온하고 아늑하여 그냥 이곳에 눌러 앉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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