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열왕릉 동쪽의 소로를 따라 선도산 정상을 향하여 가다보면 산기슭에 도봉서당이 있다. 서당 뒤쪽으로 주차할 수 있는 제법 넓은 공터가 있다. 이곳에서 북동쪽 산기슭에 홀로 외로이 서 있는 탑을 볼 수 있다. 보물 제65호로 지정된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서악동 삼층석탑이다. 탑 주위로는 온통 구절초 꽃이 뒤덮고 있는데 2011년 신라문화원에서 심었다. 지난 10월 14일(토)과 21일(토) 두 차례에 걸쳐 이곳에서 구절초 달빛 음악회가 열렸다. 꼭 참석하고 싶었으나 일이 있어 그러지 못해 아쉬웠다. 달빛 아래 하얗게 핀 구절초 꽃을 상상하다보니 문득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산 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흐뭇한’의 오기가 아님)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푸근히 감싸주는 달빛, 하얀 구절초꽃밭, 은은히 울려 퍼지는 음악…. 상상만으로도 숨이 막힐 것 같다. 영경사에 대해서 『동경통지』에 ‘선도산 남쪽 기슭에 있으니 삼중석탑(三重石塔)이 있고 인왕상의 조각이 있다.’라는 기록을 근거로 얼마 전까지 이 탑을 영경사지 삼층석탑이라 하였다. 그러나 그 이전에 발간된 『동경잡기』에는 관련 기록이 없다. 태종무열왕릉의 위치를 『삼국사기』 「신라본기」 에서는 ‘영경사 북’으로 『삼국유사』 「기이」편에는 ‘애공사 북’이라고 하였다. 현재 서악동삼층석탑은 이들 기록에 나오는 사찰과는 반대의 위치에 있어 영경사지 또는 애공사지 삼층석탑이 아님이 분명하다. 화강암으로 축조된 모전석탑계열의 이 탑은 높이가 5.1m로 이형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웠으나 상륜부는 안타깝게도 모두 없어졌다. 지대석으로 큰 돌 4장을 바닥에 깔고 그 위에 놓인 기단은 다듬은 돌덩이 8개를 서로 어긋나게 2단으로 쌓았다. 기단 윗면에는 몸돌을 받치기 위해 한 장의 널돌을 두었다. 탑신부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다. 1층 몸돌은 여섯 개의 면이 모두 반듯한 정육면체로 되어 있으며, 모서리 기둥은 없고, 남면 가운데에 큼직한 네모꼴 감실(龕室)을 얕게 파서 문을 표시하였다. 문의 중심부에는 4개의 못을 박은 자리가 있는데, 장식을 달았던 흔적으로 추정된다. 문의 좌우에는 금강역사상이 조각되어 있다. 감실은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고 있음을 상징하니 불국토(佛國土)를 금강역사가 지키고 있는 것이다. 지붕돌은 하나의 돌에 받침과 층급을 모두 표시하였는데, 아랫면의 받침은 1층부터 3층까지 5·5·4단이고, 윗면의 층급은 1층부터 3층까지 7·6·7단으로 되어 있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형식의 탑과는 달리 이 탑의 경우 기단은 가공을 최소화하고 탑신은 문비 장식까지 하여 기단에 비해 화려한 편이다. 기단은 중생이 사는 번뇌로 가득한 현실세계인 예토(穢土), 탑신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고 있으니 번뇌를 벗어난 청정한 이상세계인 정토(淨土)로 생각하여 이 탑을 조성한 것은 아닐까? 돌을 벽돌과 같이 다듬어 쌓은 탑을 모전석탑이라고 하는데 대표적인 탑이 분황사탑이다. 서악동삼층석탑과 같이 옥개석의 낙수면이 층을 이루는 이런 종류의 탑도 모전석탑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 석탑과 같은 유형으로는 경주 남산동사지 동삼층석탑과 남산 용장골 제7절터 삼층석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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