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가 시작할 때부터 그 학생은 눈에 띄었다. 서글서글한 말투나 동료를 대하는 배려 깊은 행동에서 대학생 특유의 건강한 모습까지 하나 빠지는 것 없는 완벽한 학생이었다. 껌 씹는 버릇만 뺀다면 말이다. 첫날은 첫날이라 그런가 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매 강의 때마다 씹고 있던 것이었다. 그는 분명 ‘껌 좀 씹는’ 학생이었다.
여러 번 고민하다가 그래도 공개적으로 언급을 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 ‘요즘 수업 시간에 껌을 씹는 학생이 있는 것 같다’고 에둘러 말했더니 금방 효과는 있었다. 그러나 웬걸, 덜 오물거려 그렇지 그 학생은 계속 껌을 씹고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이 녀석을 어쩐다?
다른 나라에서는 어떤지 모르지만 적어도 동방예의지국에서는 껌은 좀 조심스러운 물건이다. 어르신들 앞에서나, 말을 할 때나, 또는 극장 같은 공공장소에서 껌을 씹는다면 일단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된다. 이따금씩 입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는 또 어떻고. 예쁘고 바르게(!) 씹는 모습이 어떤 건지 모르는 현실에서, 껌을 씹는다면 일단은 좋은 모습은 아닌 걸로 인식된다. 식사 후 씹는 등 몇 가지 예를 제외하고 말이다. 어쨌거나 불행한 사실은 수업 시간마다 그 학생은 껌을, 나는 그를 은연중에 씹어대고 있다는 거다.
지금부터 말할 껌에 대한 반전 드라마를 그 학생은 이미 알고 있었을까? 위에서 말한 문화적으로나 교육적으로나 부정적인 껌이 의학적으로는 만만치 않다는 사실 말이다. 먼저 껌을 씹으면 턱 근육과 두피 근육의 운동이 활발해져 뇌가 활성화 된다고 한다. 뇌에서 손과 발 등 신체 각 부분으로 연결된 신경 중 약 50%가 반드시 턱을 지난다. 그러니 껌을 씹으면 턱이 움직이면서 신경 조직의 연결이 촉진되어 뇌가 활성화 된다.
또한 껌을 씹으면 뇌로 가는 혈류량도 25~40% 정도가 향상되어 그만큼 뇌에 신선한 산소를 공급할 수 있게 된다. 그 결과 주의력과 집중력이 향상되니 껌을 씹으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결론은 단호하다. 세인트로렌스 대학에서도 실험을 해봤더니, 껌을 씹으면 25~50% 정도 기억력이 향상되더란다. 단, 기억력은 껌을 씹은 직후 급격히 향상되어 20분 정도 지속되다가 그 이후엔 정상 수준으로 되돌아 왔지만 말이다. 이런 사실로 볼 때 중요한 시험 전이나 입사 인터뷰 직전에 껌을 씹는다면 머리를 쓴다거나 집중하는데 확실히 도움이 될 것이다.
그게 다가 아니다. 껌을 씹으면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도 커진단다. 이 사실을 제법 잔인한 방식으로 증명한 실험이 있다. 실험용 쥐에다가 암을 유발하는 발암물질을 투여한 후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게 뒤집어놓는 구속 스트레스 실험을 했더니, 그렇지 않은 쥐들보다 무려 50% 이상의 암 발병률을 보였다고 한다. 그런 쥐들에게 막대기를 씹게 했더니 발병률이 9.8%로 확 떨어지더란다. 이는 씹는 저작(咀嚼)활동이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을 확실히 키운다는 증거다.
마지막으로 다이어트에 성공하길 원하는 사람들도 껌을 활용할 필요가 있겠다. 19~22세 여대생들을 대상으로 9주에 걸쳐 하루 세 번 식전에 10분씩 껌을 씹게 했더니만 참여 학생들의 무려 70%가 체중이 감소했다고 한다. 허리, 허벅지나 엉덩이 등 하체에 많이 분포한 피하지방과 배 주변에 몰려있는 내장지방 모두 껌을 씹는 것만으로 감소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이런 부위는 좀처럼 살이 안 빠지는 건 누구나 안다.
평소 운동 잘 안하고 밤만 되면 입이 심심해 뭔가를 찾는 사람치고 배에 책 한권 두께의 살이 안 잡히는 사람 없다. 그들의 일관된 주장은 나이 들어 그렇게 잡히는 뱃살은 웬만히 운동을 해도 절대 안 빠진다는 거였는데, 껌 씹는 것만으로 지긋지긋한 뱃살을 뺄 수 있다면 이 얼마나 경제적이고 손쉬운 방법인가. 실험이 끝나고 5주가 지나 다시 몸무게를 재어봤더니 이전 체중으로 돌아가는 요요현상도 없었다고 한다. 아 껌이 이렇게 위대할 줄이야.
껌 씹는 그 학생을 어떻게 대할지, 껌 씹는 행위를 어떻게 봐야할 지 스스로 곱씹어 봤다. 결론은 이렇다. 수업 중에는 절대 껌을 못 씹게 하자. 단, 수업이 마치면 그 학생과 나누어 씹자고…. 그 좋은(!) 껌을 녀석만 씹게 둔다면 왠지 억울할 것 같아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