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를 웃긴 꽃 -윤희상 나주 들판에서 정말 소가 웃더라니까 꽃이 소를 웃긴 것이지 풀을 뜯는 소의 발밑에서 마침 꽃이 핀 거야 소는 간지러웠던 것이지 그것만이 아니라 피는 꽃이 소를 살짝 들어 올린 거야 그래서, 소가 꽃 위에 잠깐 뜬 셈이지 하마터면, 소가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한 것이지 -꽃에 들려 올려진 소 오랜만에 유쾌하고 싱그러운 시를 읽었다. 상황은 이렇다. 풀을 뜯는 소의 발 밑에 마침 꽃이 한 송이 피어올랐다. 간지러움을 느낀 소는 그 꽃을 살리기 위해 순간, 몸을 들어올렸다. 기우뚱하며 쓰러질 뻔한 소는 겨우 중심을 잡았다. 작고 연약한 꽃이 커다랗고 무거운 소를 ‘들어 올렸’다고 표현하는 것은 시인의 재치다. 시인은 “피는 꽃이 소를 웃”기고, 소를 간질이고, “소를 살짝 들어 올”리고, “하마터면,/소가 중심을 잃고/쓰러질 뻔”했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소가 뒤뚱거리며 중심을 잡는 모습이 눈 앞에 동영상처럼 펼쳐진다. 이 엉뚱한 상상이 시를 아연 살아나게 한다. 그러나 한 꺼풀 더 들어가 보면 이건 세상을 살짝 비틀어 세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보는 시인의 미적 센스만을 아닐 것이다. 그것은 건장하고 무거운 소나 연약하고 자잘한 꽃, 아니면 자연의 어떤 미물이라도 모두 동등한 가치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자의 눈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그렇다. 이 시에는 시인도, 소도, 꽃도 모두 하나의 생명의 그물 속에 있다. 그들은 대등하게 관계를 맺고 서로 의존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그 그물의 소유자라는 생각은 위험하다. 우리 역시 그물의 한 가닥일 뿐. 이 시에 표현된 이면도 진실이다. 즉, 하나의 소중한 생명을 밟지 않기 위해 중심을 잃은 소를 보는 ‘꽃’은 그의 배려에 얼마나 고개를 끄덕이며 고마워했을까. 그 신사도에 얼마나 감동했을까. 이 싱그러운 공생! 이러한 공감 능력과 이타성이 소에게도 꽃에게도 있다는 것을 시인은 알아차리고 있는 것이다. 현상을 바로 보는 날카로운 시선도 시에서는 필요한 요소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인간과 생물, 모든 생명체들이 조화와 공생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는 인식은 더욱 중요하다. 인간에 의한 자연지배와 그로 인한 생태계 파괴가 만연하는 오늘, 인간과 자연, 주체와 세계가 하나로 만나 생명공동체로 공존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운 감성적인 시 한 편을 읽는 기쁨! ---------------------------------------------------------------------- 손진은 시인 약력 경북 안강 출생. 1987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95 매일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시집 『두 힘이 숲을 설레게 한다』, 『눈먼 새를 다른 세상으로 풀어놓다』, 『고요 이야기』, 저서 『서정주 시의 시간과 미학』외 7권, 1996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경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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