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석과 철가루가 상호작용을 하면서 만들어진 패턴, 우연성의 계기와 그 계기가 만들어내는 현상으로 제작된 이기성 작가의 초대전이 갤러리 라우(관장 송휘)에서 11월 30일까지 전시된다. 어린 시절 플라스틱 책받침 위에 철가루를 뿌리고 책받침 아래에서 자석으로 이리저리 움직이며 놀았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다들 한번쯤 생각하거나 경험해봤고, 흥미로워했던 부분을 실제로 작업으로 옮겨 놓은 것. 공업용, 건축용 철이나 광물 등을 여러 도구를 이용해 그라인딩 하고 선과 점등의 효과를 살려 마치 동양화의 여백처럼 혹은 호수의 물결처럼, 독특한 기를 내뿜으며 마치 블랙홀처럼 관자의 시선을 모두 빨아들이는 무한한 우주의 공간처럼도 느껴진다.
철가루라는 다소 차가운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추구하는 온화한 색과 직물 같은 질감 때문인지 그의 작품에서는 따뜻한 느낌을 자아낸다.
철가루를 입혀 철판처럼 만든 패널 위에 철가루를 흩뿌리고 패널 이면에 자석을 대고 움직이면 표면의 철가루가 반응하며 같이 움직인다. 정형 비정형의 패턴이 만들어지고 나면 표면처리 작업으로 형태 그대로를 고정시키며 그의 작품이 탄생된다. 우연성의 계기를 모티브로 삼고 있는 이기성 작가.
“우연의 본질은 어떤 대상의 존재의 유무를 생각하든지 간에 완전히 무관심하게 내버려두는 것이다. 원인은 사유를 위한 방향을 제시하며 개별적 방식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그런데 우연은 이와 같은 사유의 과정을 파괴하고 정신을 무분별한 원상태로 만들어 버린다. 완전한 무분별이 우연의 본질적인 속성이므로 형태가 만들어지는 환경과 조건을 조성하는 식으로 최소한으로만 개입한다. 그러면 사물현상이 저절로 작동하면서 형태가 만들어진다”
이 작가는 자석과 철가루가 상호작용하면서 패턴을 만드는 작업을 한다. 비정형 이지만 그렇게 제안된 좌표는 대개 정형의 기하학적 형식을 띠고 있고 그 엄정한 패턴이 혼란스런 세상의 관성에 맞선 내적 질서의 표상인 것이다. 그의 작품은 전시장 조명 아래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빛의 이미지를 통해 존재의 시원인 우주로 시선을 확대하고 존재와 비존재에서 생명력의 의미를 추출해낸다. 빛은 폐쇄적인 현실 공간에서 개방적인 우주 공간으로 나아가는 이기성의 시도를 뒷받침하는 어셈블리지며, 내면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 사이에 놓인 연결 고리로 그의 작품에 철학적 의미를 더해준다.
최용 미술평론가는 “이기성은 매번 신선한 충격과 낯선 표정으로 다가선다. 마블링 기법을 이용한 작업으로 그림을 떠내는 모더니즘 색채를 띤 초기 작품, 드리핑 기법을 구사하여 자연 현상에 관심을 보인 중기 작품을 거쳐, 동판과 철가루 기법으로 휴머니즘을 지향한 최근 작품까지 나타난 그의 작업 특성은 자아 존재 찾기로 집약된다. 그는 현실 상황의 무의식적 반영과 우연성, 가변성의 프로세스를 주된 기법으로 하며 몽환적 내면을 그려내는 과정에서 일상의 소재를 일탈의 방법으로 다루는 실험 정신을 견지한다”며 “그의 작품에는 일상의 재료가 중요한 오브제로 등장하며 개인적 자아는 표면에 직접 드러나지 않는다. 사물과 현상을 전면 투사하여 공감(sympathy)을 이끄는 객관화 기법으로 자아의 존재 의미를 찾는다”고 평한 바 있다.
아이들에게는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하고 부모들에게는 잠시 사색의 자유에 빠져 볼 수 있는 시간. 깊어가는 가을 아이들과 함께 전시장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서양화가 이기성 작가는 1959년 대구에서 태어나 계명대 서양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무사시노 대학원을 수료했다. 1996년 대구전시를 시작으로 대구, 일본, 서울 등에서 개인전 19회, 200여회의 단체전을 가졌으며 현재 TCAA, 대구미술대전초대작가, 한국미술협회. 그룹 TAC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